귀환! 1990년대…나의 10대 '팬질'의 추억

입력 2015-01-17 07:24:58

"우리 오빠 욕하지 마!"

친오빠도 아닌데 '우리 오빠'가 구설에 오르면 발끈했던 적이 있었는가. 1990년대에 초'중고를 다녔던 10대에게 HOT와 젝스키스, god, 유승준, 임창정 등 좋아할 가수의 스펙트럼이 넓어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신 옆의 평범한 직장 동료와 친구가 어쩌면 열심히 오빠를 쫓아다녔던 과거를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팬질 좀 해봤다'는 사람들을 만나 오빠에 얽힌 추억을 들어봤다.

◆"콘서트 표 사려고 길에서 떡도 팔아봤다"-오빠: HOT / 팬: 오선영, 오지영(29'회사원) 쌍둥이 자매

우리 방에는 곳곳에 HOT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었다. 잘 때도 오빠 꿈을 꾸려고 천장에도 붙였다. 브로마이드를 붙일 때 '룰'이 있었다. 오빠들 사진이 양면 인쇄이면 아무리 좋은 사진이라도 벽에 붙일 수 없었다. 벽면 안쪽에 깔리는 오빠한테 미안하니까. 오빠들이 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브로마이드 앞에서는 옷도 못 갈아입었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이 HOT를 사랑해주길 원했다. 친한 친구 생일에 친구의 음악 취향과 상관없이 HOT 5집 앨범을 선물했다가 욕을 먹기도 했다. 당시에는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이라 사진이 귀했다. 그래도 '직찍'(직접 찍은 사진)을 인화해 파는 사람들이 있어서 문방구에서 파는 사진 대신 직찍을 사모았다.

진정한 팬이라면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오빠들의 모습을 봐야 한다. 중학생의 용돈과 빼돌린 급식비를 모아서는 콘서트 표를 살 수 없었다. 내 생애 첫 아르바이트는 길에서 찹쌀떡 팔기였다. 지금 하라면 부끄러워서 못하겠지만, 그때는 콘서트에 꼭 가야 한다는 집념 때문에 열심히 팔아서 돈을 모았다. 부모님은 지금도 모르시겠지만, 거짓 조퇴도 해봤다. 당시 유행했던 '게릴라 콘서트'가 강원도 원주에서 열렸는데 토요일이어서 학교 수업과 겹쳤다. 둘 다 선생님한테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경남 창원에서 원주로 날아갔다. 당시 선생님은 쌍둥이니까 둘이 동시에 아프겠거니 생각하셨나 보다. 또 다른 날은 콘서트 때문에 복통을 핑계로 수업을 빠지려 했는데 선생님이 침을 20방 놔주는 바람에 못 간 적도 있다. HOT가 해체했을 땐 몇 날 며칠을 울었고, 세 그룹으로 쪼개졌을 땐 사랑은 공평하게 나눠줘야 한다며 팬클럽 세 개에 다 가입했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30대로 추정되는 여성이 지갑에 HOT 캔디 시절 사진을 넣고 다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얼마 전 고향집에서 아빠한테 연락이 와서 "HOT 잡지와 사진을 버려도 되냐"고 하셔서 오빠들을 쫓아다녔던 그 시절 추억이 생각났다. 예전에 같이 '팬질'했던 중학교 친구가 HOT 콘서트 하면 다시 갈 거냐고 물었다. 그래서 이렇게 답했다. 당연한 걸 왜 묻느냐고.

◆"나 홍경민한테 삐삐 온 중딩이야~!" -오빠: 홍경민 / 팬: 임송미(30'은행원)

오빠를 처음 알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우연히 TV를 보는데 '이제는'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오빠를 봤다. 그땐 친구들이 오빠를 잘 몰라서 대외적으로는 HOT 팬인 것처럼 지냈다. 중1은 조용히 노래만 듣다가 중2 때 '팬레터'의 존재를 알았다. 그때 사서함 주소로 편지 쓰는 게 유행이어서 1년간 거의 매일같이 편지를 보냈다. 편지 끝에는 항상 내 이름과 삐삐번호를 남겼고, 삐삐 배경음은 당연히 오빠 노래를 깔았다.

어느 날 '심쿵'(심장이 쿵쾅거린다는 뜻)하는 일이 생겼다. 오빠한테 삐삐가 왔다! 아직도 내용이 기억난다. '송미야, 경민이 오빤데. 배경 음악 많이 들어본 노래다? 공부 열심히 하고.' 내가 팬레터를 너무 많이 써서 오빠가 걱정했나 보다. 점심때마다 공중전화로 음성 메시지를 듣고 또 들었다. 오빠가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했으니 더 열심히 공부했다. 중3 때는 책상에 앉아서 편지 쓰고, 공부하고, 오빠 노래 듣고, 이 기억밖에 없다.

2000년, 오빠는 '흔들린 우정'으로 한국의 리키 마틴이란 별명을 얻으며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 전에는 오빠 인지도가 낮아서 속상했던 일이 많았다. 그땐 잡지에서 주로 연예인 정보를 얻었다. HOT, god 등 인기 연예인들은 표지에도 큼지막하게 잘 나오는데, 우리 오빠 사진은 잡지 모서리에 증명사진만 한 크기로 나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오빠의 가치를 몰라주는 잡지에 정보를 의존할 수 없었다. 천리안, 나우누리 PC통신이 연결된 친구 집에 놀러 가서 PC통신에서 만난 홍경민 팬과 소통하며 정보를 나눴다.

오빠를 직접 만난 적도 있다. 대구 동성로 시내 레코드점에 홍경민 팬 사인회가 열린다고 해서 가게 문이 열리기도 전에 갔는데 기다리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또 한 번 속상했다. 세 번째로 사인받고 일회용카메라를 가져가서 사진도 찍었다. 며칠 뒤 아빠가 인화한 사진을 건네며 "실망하지 마라"는 말을 하셨다. 플래시를 터트리지 않아서 누가 오빠고, 누가 나인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시커멨다. 그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TV에 홍경민이 나오면 남편이 "저기 너희 오빠 나오네"라며 놀린다. 경민이 오빠도 작년에 결혼을 했더라. 내가 오빠보다 먼저 결혼해서 애 둘을 먼저 낳을 것이라고 그때는 상상도 못했다. 오빠도, 나도 이렇게 같이 늙는가보다. 오빠한테 한마디 하고 싶다. "경민이 오빠, 나의 사춘기를 함께해줘서 고마워요. 오빠가 있어서 사춘기가 행복했어요."

◆"윤계상한테 녹용 보내준 거, 엄마는 모르신다" -오빠: god / 팬: 서민주(가명'30'회사원)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한의원을 했던 우리집에는 항상 한약재가 넘쳐났다. 녹용이 좋다는 것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몸에 좋은 약은 빡빡한 스케줄로 바쁜 우리 오빠(윤계상)가 먹어야 했다. 하트가 그려진 예쁜 상자 5개에 녹용과 각종 한약 재료를 엄마 몰래 나눠 담아 오빠 부모님이 운영하는 갈빗집으로 보냈다. 갈빗집 이름만 알고 주소가 없었는데 영어과외 선생님의 도움으로 알아냈다. 편지에는 "오빠, 보고 싶어요"라고 적고 내 휴대전화 번호를 남겼다. 그때 나는 휴대전화가 있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수업 시간에 부재중 전화가 들어왔다. 오빠 갈빗집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다시 전화를 거니 오빠 아버지가 받으셨고 "선물 고맙다. 한 번 놀러 와라"라고 하셔서 진짜 놀러 갈 뻔했다. 그 뒤 학교에 이 사건이 소문났고, god 팬인 내 친구가 이 사실을 이용해 먹었다. "한약 보냈던 애 친구예요!"라며 갈빗집에 수시로 전화를 걸었다.

나는 처음부터 god 팬은 아니었다. 류시원이 대백프라자에 팬 사인회를 왔는데 잘생겨서 반했고, 팬클럽 '프린스'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오빠들이 아기 '재민이'를 키우는 'GOD의 육아일기'를 보면서 홀딱 반했고, 프린스를 때려치우고 god로 환승했다. 아, 그리고 지금까지 엄마는 내가 오빠 갈빗집에 한약 보내준 거 모르신다. 이건 오빠와 나 사이에 영원한 비밀이다.

◆"핑클 이진 사진만 500장, 수능 선물도 챙겨 보냈다" 누나: 핑클 / 팬: 류재현(32'방송기자)

'핑클 이진이 너무 좋다. 사진을 수첩에 끼워넣고, 책상에도 끼워넣었다.' 1998년 8월 31일. 내 일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중3 때 내 취미는 '누나(이진) 사진 모으기'였다. 450원, 500원짜리 사러 학교 앞 문방구에 매일 출근했고, 500장 넘게 모아 앨범을 만들었다. 핑클 화보가 나오기 전날에는 심장이 두근거려서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였다. 두 번째 취미는 '핑클이 출연하는 TV 프로그램 녹화하기'였다. 음성 사서함을 들으면 핑클이 몇 번 채널, 어떤 프로그램에 나오는지 미리 알 수 있었다. 가수들은 명절이 특수다. 하루에도 여러 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누나가 몇 시에 어떤 프로그램에 나오는 줄 알면서 외면하고 친척집에 갈 수 없었다. 이거 녹화한다고 친척집 안 간다고 버티다가 엄마한테 진짜 많이 혼났는데, 그래도 안 가고 집에 남아서 녹화할 만큼 나는 핑클을 사랑했다.

내가 중3 때 고3이었던 누나는 수능을 쳤다. 튀는 선물을 보내고 싶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시험 잘 쳐라"는 의미로 야구 방망이와 파리채를 보내기로 했다. 야구방망이는 구했는데, 수능 시즌이 겨울이니까 파리채를 찾기가 어려웠다. 동네 철물점을 다 뒤져서 파리채를 겨우 구했고, 정성스레 쓴 편지와 함께 누나한테 보냈다. 사실, 편지는 항상 두 개씩 썼다. 편지를 보내면 나중에 내가 뭐라고 썼는지 기억이 안 나니까 두 개를 써서 하나는 내가 보관했다.

지금은 핑클보다 예쁘고 춤 잘 추는 걸그룹이 TV에 많이 나오는데 그때 그 감정이 안 느껴진다. 그때는 누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떨렸다. 그건 사랑이었을까? 아마 그랬던 것 같다.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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