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중형마트 득세, 어찌할건가

입력 2015-01-16 07:10:13

"대구시의 조례 제정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도 잘한 조치다."

기자로서 보람은 기사를 쓴 후 큰 반향이 일어나고, 이후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는 일이다. '대형마트 규제 유통법, 그 이후' 시리즈 기사(본지 9일 자 1'4면)는 기자로서는 보람을 느끼게 해줬지만 또 앞날을 생각하면 먹먹해진다.

기사가 게재된 후 대구시의 발 빠른 조치에 사실 놀랐다. 그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대구시는 기사 게재 다음 날인 10일 식자재마트 등 변종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부터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서민경제특별진흥지구' 조례 제정과 지구 지정을 선포했다.

조례에는 당장 실효적인 대책도 들어있다. 대구시 입장에서는 대형마트와 중형마트(식자재마트 포함)로부터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기에 가장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도 모른다. 특히 전통시장 1㎞ 이내 입점 사전예고제와 기존 상권과의 상생협력 계획서 제출 등은 앞으로 중형마트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것을 막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서민경제특별진흥지구 지정을 통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것도 높이 살 만하다.

그럼에도 지역 유통시장의 미래를 생각하면 발을 뻗고 잘 수가 없다. 이미 골병이 들 대로 든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대구시의 이번 조례 발표는 암환자에게 암세포가 더 퍼지지 않도록 취한 항암치료 정도로 여겨진다. 궁극적으로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중형마트는 이미 유통시장의 새 강자로 등극했다. 대형마트가 독식했던 시장에 규제가 시작되자, 그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중형마트의 무한 확장은 대구시의 조례 제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두서너 발 앞서가고 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곳곳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마트들은 쫓겨날 염려가 없다.

현실을 냉정하게 보면, 서민경제특별진흥지구를 지정하고 보호하겠다는 대구시의 조례는 '사후약방문'이 될 듯하다. 시리즈 하편(본지 12일 자 5면)에 나온 사례들을 보면, 경쟁력을 잃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은 회생불능의 중환자다. 대구시의 이번 조치가 이들을 살리는데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중형마트의 득세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성공 요인은 다양한 품목과 가격경쟁력이다. 중형마트 업주들은 일부 품목을 공동으로 구매해 가격을 대형마트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또 중형마트는 규모의 경제도 실현하고 있다. 합종연횡을 통해 마트들끼리 뭉쳐서 경쟁력을 기르고, 적지 않은 투자도 해서 시장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특히 주택에서 아파트'주상복합 단지 중심으로 삶의 패턴이 옮겨가면서, 단지마다 들어선 중형마트는 시민들 소비생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대형마트와 SSM에 대한 규제 강화도 중형마트 성장의 발판이 됐다.

시장 흐름으로 볼 때, 대구시의 조례를 통한 규제는 한발 늦었다. 중형마트가 득세할 때까지 중앙 정부뿐 아니라 각 지자체들도 사실상 넋 놓고 있었다. 인제 와서 그 틈새를 잘 파고들어 경쟁력을 확보한 중형마트를 탓할 수 없다. 수년 사이에 급성장하고 있는 식자재마트를 나쁜 쪽으로만 볼 수도 없다.

새해 벽두에 나온 대구시의 조례 제정은 '사후약방문'이 될지라도, 시 입장에서는 적절한 조치였다. 더 고민해서 구체적인 대책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현 상황을 바둑에 한 번 비유해보자. 대마가 잡혀 패색이 짙은 바둑 판세에서 남은 수를 잘 둬서, 몇 집 이내로 졌다면 대성공이다. 혹시 또 모른다. 끝내기(대구시의 조례 제정 및 지구 지정 등 관련 대책)를 잘하다 보면, 꼼수가 아닌 묘수가 생각나 죽은 대마(전통시장과 골목상권)가 살아나는 기적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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