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독서의 한계

입력 2015-01-14 07:05:13

▲이성호
▲이성호

책을 읽는 것을 인생을 얻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책을 통해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간접적으로 체득하기 때문일테지만, 요즘 책보다는 다른 것, 인터넷이나 SNS 등에서 이것들을 공유하고 습득할 기회가 많아서일까? 종이책을 읽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3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9.2권, 학생들은 32.3권이라고 한다. 성인의 경우 2011년에 비해 0.7권 감소한 반면, 학생은 8권 증가한 것이라고. 그리고 이는 일본이나 유럽 등 우리들이 흔히 선진국이라 일컫는 나라들의 절반 혹은 그 이하의 수준에 불과하다. 학생들의 독서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에 조금 위안을 느끼지만, 성인들의 독서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그만큼 대한민국 현대 생활자들의 각박함을 대변하는 것이라 마음이 씁쓸해지기도 한다.

얼마 전 한 지역의 독서감상문 공모전에 대한 심사를 의뢰받아 학생들의 글쓰기 실상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무척 아쉬웠던 것은 학생들 역시 너무나도 '손쉬운 독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벼운 읽을거리들을 찾아 쉽게 글을 만들 수 있는, 감상문 쓰기용 독서다. 수업의 연장으로 느껴지는 학생들의 독서를 성인보다 그 양이 몇 배 많다고 긍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작은 사건이었다.

독서는 책을 읽는 행위 그 자체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권의 책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진리는 바꾸어 말하면, 그 책이 한 삶을 바꿀 만큼 좋은 책이라는 사실에 맞닿아 있으니까. 이렇게 보자면 독서는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는가보다는, 얼마나 좋은 책을 읽는가가 오히려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 빨리 그리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보다는, 어렵고 더디지만 삶의 이면을 드러내며 진정한 충고와 의미를 되새김할 수 있게 하는 책들이 개개인에게 미치는 독서의 효과가 더욱 클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 도서 한 권을 들고 저자의 철학적 개념과 문맥, 사상 궤적을 두고 친구와 열띤 토론을 벌이던 시절. 치기일 수도 있지만,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세상의 모든 사상을 섭렵한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던 그때의 독서 열기가 아직 남아있지는 않지만, 얼마 전 후배로부터 추천을 받아 구입한 책 몇 권에 손을 얹으며 다시 책 속의 글자를 향해 뜀박질하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듣는다.

문장과 문장에 호흡을 불어넣으며, 천천히, 뜨거운 감자를 먹듯이 곱씹으며 읽어 내려가는 책. 오늘, 긴 겨울밤, 주린 내 마음에 든든한 양식이 되어 줄 뜨끈뜨끈한 책 한 권을 찾아 먼지 앉은 책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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