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출직과 임명직의 임기는 같을 수가 없다. 선출직은 길고 임명직은 짧다.
선출직이라면 타의에 의해 떠밀려 나거나 선거에서 떨어지지 않는 이상 임기를 다 채우려 한다.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등과 같은 공직이나 협회장, 조합장 등과 같은 민간 부문이나 다르지 않다. 그럴듯한 명분과 어거지 구실을 내걸면서까지 예외 없이 더 있으려고 한다. 욕을 먹더라도 '한 번 더'를 고집한다.
임명직은 선출직에 비하면 파리목숨이다. 이름 그대로 임명권자의 마음먹은 대로다. 몇몇 기관에서는 임명직이라도 잦은 교체의 부작용을 우려해 임기를 보장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2년이 임기라는 검찰총장이 좋은 예이다. 그래 봤자 임명직일 뿐이다. '용퇴'라는 그럴듯한 말로 치장을 하지만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쫓겨나거나 물러나는 건 매일반이다. 민간 기업에서는 오너가 나가라면 임원들은 그날로 짐을 싸야 한다. 임명직에는 임명권자가 기업의 오너와 같은 존재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임명직이라고 해도 지방의 주요 기관장들 임기는 너무 짧다. 짧아도 너무 짧다. 허접한 자리도 아닌데 그렇다. 대구고등검사장, 대구지방검사장, 대구지방경찰청장, 경북지방경찰청장, 대구지방국세청장이 누군가? 국회의원이나 시장, 지사 등 지역을 대표하는 선출직들보다 의전 순서에서는 뒷자리지만 물리적인 '힘'으로 치자면 결코 밀리지 않는 자리다. 이들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많은 이들이 긴장해야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들은 거의 1년도 채우지 않고 임지를 떠난다. 10년도 더 됐으니 전통으로 굳어진 것 같다. 물론 잘못이 있다면 어제 왔다고 해도 오늘 내보내야 한다. 오전에 왔다고 해서 오후에 옷을 벗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서 문제다. 또 유독 대구만의 일도 아니다. 다른 지방도 대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더 심각하다.
편의상 대구를 예로 들어본다. 대구고검장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11명이 부임했다가 대구를 떠났다. 공석으로 있던 기간을 제외하면 평균 재임 기간은 9.6개월이다. 현직인 박성재 고검장은 2013년 말에 부임했으니까 1년을 넘겼다. '장수파'에 속한다. 대구지검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9.75개월이 평균 임기였다. 재임 기간이 2개월인 이도 있었고 7개월도 있었다. 10개월을 채우지 않은 이가 5명이나 됐다. 2007년 3월에 개청된 서부지청의 지청장도 역시 10.25개월에 그쳤다.
경찰청장이라고 다르지 않다. 대구경찰청장은 지난 10년간 현 이상식 청장을 빼고도 11명이 스쳐갔다. 평균 임기는 10.45개월, 짧은 이는 7개월도 있었다. 경북경찰청장 역시 10년간 현직인 김치원 청장 이전까지 모두 11명이 왔다가 갔다. 평균 재임 기간은 10.9개월이었다. 대구국세청장의 재임 기간은 정도가 더 심하다. 현직인 남동국 청장을 제외하고라도 지난 10년간 13명이 왔다가 갔다. 평균 재임 기간은 9.3개월 정도였다. 짧은 이는 6개월에 그쳤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지방의 괜찮은 기관장 자리는 한 사람씩 돌려가면서 앉아보는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서울의 고위직으로 가기 위한 스펙 쌓기의 일종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서울서 고생했으니 지방에 내려가서 일정 기간 쉬라는 의미인가? 만연한 지방 홀대의 변종 같아서 찜찜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몇 달 만에 다른 곳으로 떠나도록 하는 인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당사자들도 답답할 것이다. 내일 떠날지 모레 떠날지 모르는데 무슨 열정으로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을까? 재임 기간 동안 '불의의' 사고로 낙마하지나 않도록 비는 이들을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또 '좋은 게 좋다'는 보신주의를 누가 나서서 비판할 수 있겠나? 이런 일이 벌어지라고 임기를 짧게 만든 건 아닐 텐데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딱 그렇다.
임명권자의 생각은 도대체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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