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교육 강화, 진로집중형 수업, 학교간 협력 학습

입력 2015-01-12 06:24:45

학교에 대한 불신의 벽이 어느 때보다 높다. 학교가 다시 서려면 수업에서부터 변화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수업 내용과 방식을 바꾸는 학교가 생겨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송현여고의 인문경제학 캠프 운영 모습과
학교에 대한 불신의 벽이 어느 때보다 높다. 학교가 다시 서려면 수업에서부터 변화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수업 내용과 방식을 바꾸는 학교가 생겨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송현여고의 인문경제학 캠프 운영 모습과 '배움의 공동체 수업' 방식을 도입한 경북대사범대부설중의 수업 모습. 매일신문 DB

교육계 안팎에서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학교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가 달라지려면 수업을 바꿔야 한다. 강의와 암기 위주 수업을 반복하면 창의성, 비판적 사고력, 문제해결력을 키우기는커녕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만 더 키우게 된다. 배려와 소통을 가르친다는 건 더더욱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창의성과 인성,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 '수업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친구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지적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이 같은 목소리에 공감, 수업 내용과 방식을 바꿔나가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시교육청이 올해 추진하는 ▷인문학 교육 확산 ▷일반고 역량 강화 사업을 통한 진로집중형 교육과정 확대 ▷주입식 수업에서 협력 학습으로 전환 모색 등이 그것이다.

◆인문학 교육으로 따뜻한 사람 만들기

책쓰기와 토론 교육을 확대해온 대구시교육청은 올해 학교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책쓰기, 토론과 연계한 체험 중심 인문학 교육으로 배움이 즐거운 학교 문화를 만들고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만들자는 취지에서 시작하는 정책이다.

인문학 교육의 효과는 송현여고(교장 김영보)의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송현여고는 교육부가 지정한 인문 소양 교육 선도학교. 지난해 9월 선도학교로 지정받기에 앞서 송현여고는 이미 인문학 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4월과 9월 각각 '생각하는 삶'과 '성찰하는 삶'을 화두로 하는 인문학 기초 캠프와 인문학 심화 캠프를 연 데 이어 12월 '실천하는 삶'을 주제로 사회 문제에 대한 인문학적 실천 방안을 제안해보는 인문경제학 캠프를 개최한 것이다.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고 반겼다. 김지우(1학년) 학생은 "인문학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나만큼이나 이웃이 소중하고, 이웃과 함께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박신혜(2학년) 학생은 "내가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나가는 소중한 주체라는 점을 깨달았다"며 "다양한 인문학 지식을 쌓는 데도 도움이 돼 뜻깊은 경험이었다"고 했다.

시교육청은 대구 학생들이 초교 입학 후 고교 졸업 때까지 동'서양 고전 등 인문학 관련 책 100권을 읽도록 할 계획이다. 초교생과 중학생 각 30권, 고교생 40권을 읽히자는 것이다. 책을 읽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100회 토론, 1권의 책쓰기 활동까지 이어지도록 할 방침이다. 인터넷 카페를 활용한 학교 간 릴레이 독서토론, 학생들이 주도하는 북 콘서트도 진행한다.

인문학 교육이 안착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신경을 쓴다. 인문학 도서 목록, 학교 현장에서 인문학 교육을 구현할 적용 계획표를 개발하는 한편 교사와 학부모의 인문 소양을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교사 인문학 모임인 '경연'과 학생 중심 인문학 세미나인 '집현전'도 확대해 운영한다. 인문 소양 교육 지원단도 교사, 학부모 중심으로 하나씩 꾸린다.

시교육청 한준희 장학사는 "인문학은 사람을 배우고 사랑하는 학문이어서 학생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지난해 9월 대구교육연수원 내에 설립한 '전국 인문 소양 교육 지원센터'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사업을 펼쳐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학교 간 연계 통한 진로 맞춤형 수업 전개

일반고인 정화여고(교장 이연주)는 지난해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와 손을 잡고 진로 집중형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수능시험 위주의 강의식 수업에서 벗어나 다양한 내용과 토론, 체험 중심의 수업을 도입해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를 높이고 대학입시 수시모집을 대비하는 데도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이다. 정화여고는 토요일 오전에 국제경제, 국제정치, 논리학, 심리학, 소설 창작 입문 등의 다양한 과목을 개설해 수업을 진행했다.

정화여고 이인우 교감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전공 분야를 위주로 수업을 개설, 전공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자신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인 만큼 수업 집중도도 높다"고 했다.

공교육 황폐화 현장으로 흔히 꼽히는 것이 일반고 모습이다. 일반고 교실이 붕괴했다는 이야기는 하루 이틀 나오는 게 아니다. 일반고의 위상을 다시 세우려는 것이 교육부의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 사업이다. 일반고의 교육과정을 다양화,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발상이다.

대구시교육청은 특히 일반고의 교육과정을 손질, 일반고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 대구 전체 고교 91곳 가운데 일반고는 50곳. 이들 학교의 수업 내용을 바꿔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를 높인다는 구상이다.

시교육청이 추진 중인 일반고 교육 역량 강화 사업의 핵심은 학생의 소질과 적성, 진로 맞춤형 교육과정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일반고 한 곳당 지원하는 예산은 5천만원. 시교육청은 여기다 자체 예산 5천만원을 더해 학교당 최대 1억원까지 지원할 계획이다. 다만 이 예산은 정화여고처럼 교육과정을 변화시켜 특색 있는 수업을 진행하는 데만 쓰도록 제한한다.

시교육청은 우선 학생 맞춤형 진로 집중 과정을 설계'운영하도록 유도한다. 학교당 3개 이상 학생들이 희망하는 진로에 맞춘 수업을 개설하도록 하고, 특화된 교육과정을 편성해 시행하는 중점과정 운영 학교도 확대한다. 기존의 중점과정 운영학교는 과학중점학교(경상고, 경원고, 도원고, 심인고, 함지고), 수학중점학교(경상여고, 시지고), 음악중점학교(신명고), 미술중점학교(매천고, 수성고, 제일고) 등 4개 중점과정 11개교. 올해는 영어중점(대구고), 문예창작중점(경화여고) 학교를 추가해 운영한다. 지난해처럼 예'체능 거점'위탁학교도 운영한다.

'학교 간 협력 교육과정 거점 학교' 사업도 손질한다. 지난해 인근 일반고 간 권역별로 나눠 8개 클러스터를 꾸린 뒤 개별 학교가 운영하기 어려운 교육과정을 클러스터 내 학교끼리 협력해 진행하도록 했다. 하지만 일부 클러스터는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쳐 올해는 클러스터를 재구성, 사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시교육청 이혜정 장학사는 "그동안 일반고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이라며 "지역별, 학교별 교육 여건과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게 되면 일반고마다 특색 있는 모습을 갖게 되고 학생들의 수업 선택권도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협력 수업으로 학교 문화 바꾸기

'한 명의 아이도 배움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고, 질 높은 배움을 실천한다.'

'교사가 바뀌면 수업이 바뀌고,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

대구시교육청이 수업 방법을 바꾸자는 목표를 추진하면서 강조하는 글귀들이다. 교사 중심의 강의식 수업에서 학생의 배움에 중심을 둔 수업으로 바꾸자는 의지에서 나온 것이 협력 수업 확대다. 협력 수업은 다양한 형태로 구현할 수 있다. 최근 협력 수업 방식 중 특히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거꾸로 교실 ▷하브루타 ▷배움의 공동체 수업 등이다.

'거꾸로 교실'은 2007년 미국에서 시작된 수업 방식으로 영어로는 '뒤집다'는 의미의 '플립드'(flipped)와 교실을 일컫는 '클래스룸'(classroom)을 더해 '플립트 클래스룸'(Flipped Classroom)이라고 적는다. 기존의 교실 수업은 교사들이 만든 10분 안팎의 동영상 강의로 대신해 학생들이 미리 보고 오게 한다. 그리고 수업은 학생들이 주체가 돼 토론, 과제 수행 등 활동 중심으로 진행한다. 달서고 등이 이 방식을 도입, 학교 수업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유대인의 전통 교육 방식이라는 '하브루타'도 주목받은 수업 방식이다.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며 토론, 논쟁하는 것이 하브루타다. 원래 유대인이 경전 탈무드를 공부할 때 함께 토론하는 짝을 이르는 말에서 의미가 확대됐다. 대구 초'중학교 교사들이 모여 만든 '행복수업 디자인 연구회'를 비롯해 다양한 교사 모임에서 이 수업 방식에 관심을 두고 학교 현장에 조금씩 적용해보는 추세다.

'배움의 공동체 수업'은 모둠 수업을 통해 학생 간, 학생과 교사 간 소통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한편 수업을 공개해 교사들이 학생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특성과 정보 등을 공유하는 것이다. 일본 도쿄대의 사토 마나부 명예교수가 주창해온 수업 방식이다. 2011년 대구고가 이 방식의 수업을 도입한 데 이어 2013년 경북대사범대부설중이 전 과목에 이 수업 방식을 접목하는 등 점차 학교 현장에 확산되고 있다.

경북대사범대부설중 한원경 교장은 "학교의 본질인 수업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학교가 바뀌지 않는다"며 "학생이 수업에 참여해야 수업이 의미가 있고, 학생들이 학교를 오고 싶은 곳이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시교육청은 이 같은 협력 수업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세부 정책을 추진한다. 지난해 '배움의 공동체 수업' 직무 연수, '거꾸로 교실' 체험 연수를 진행했고 올해도 이 같은 연수를 계획 중이다. 또 협력 학습으로 수업을 변화시키려는 곳을 대상으로 지정, 행'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교실 수업 개선 희망 학교를 지난해 75개교(중학교 41개교, 고교 34개교)에서 올해는 129개교(중학교 74개교, 고교 55개교)로 늘릴 생각이다.

시교육청 윤문희 장학사는 "전통적인 강의식 수업에서 탈피해 학생이 참여하는 협력 수업을 강화하고 교사들이 수업을 연구하는 모임을 지원해 학교 분위기를 바꿔 나갈 것"이라고 했다.

채정민 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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