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發 '항명 사태'…靑 인적쇄신으로 번지나

입력 2015-01-10 06:39:06

비서실 '무너진 기강' 드러나

청와대 김영한 민정수석비서관이 9일 비선 실세 의혹 규명을 위해 소집한 국회 운영위 출석 지시를 거부하고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갑작스러운 '항명 사태'의 배경과 향후 파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이날 운영위 여야 위원들로부터 요청을 받고 김 수석에게 국회 출석을 지시했다. 하지만 김 수석이 출석을 거부, 사의를 밝혔다. 청와대 핵심 참모이자 고위공직자가 국회 여야 합의를 무시하고, 직속상관인 비서실장 지시마저 거부한 것이다. 청와대는 전례 없는 항명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분위기다. 정확한 사퇴 배경에 대해선 "본인만이 아는 일"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집권 3년차 박근혜정부에 악재가 더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 수석은 이날 오후 출석거부와 사퇴 의사를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을 통해 전달했다. 민 대변인은 "특별한 경우 외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는데 정치공세에 굴복해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고 출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면서 "다만 김 수석은 책임지고 사의를 표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김 수석의 입장을 보면 겉으로는 항명 사태의 배경은 민정수석이 국회에 출석하는 사례를 만들지 않으려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김 수석의 이번 행동을 놓고는 '자기희생'보다 '항명'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야당은 김 수석이 문건 유출자를 회유했다는 의혹을 풀어야 한다며 운영위 출석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수석이 운영위 회의에 출석한다면 집요한 공세를 피해가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회에서 어렵사리 이뤄진 여야 합의에 정면으로 부딪쳐가면서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김 수석의 사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직기강의 문란함이 생방송으로 전 국민에게 중계된 초유의 사태"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김 수석의 뚜렷한 성품이 이러한 상황에 한몫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경북 의성 출신 김 수석은 경북고, 연세대를 졸업하고 서울지검'대검 공안부를 두루 거친 전형적인 '공안통' 검사로, 상황판단력이 우수하지만 주관이 뚜렷해 호'불호가 엇갈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의 표명 배경에 대해선 말들이 많지만 청와대가 해임의사를 밝힌 만큼 김 수석은 조만간 자리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에서 "대통령에게 해임을 건의했다. 필요한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이날 '항명 사태'로 김 비서실장도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 비서실장 이하 비서진들의 공직기강과 명령 전달 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단면으로 보여준 것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계속된 인적쇄신 요구에도 유임 전망이 나왔던 김 비서실장이 문건 유출과 항명 사태 등에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도 있다.

김 수석이 국회의 정치공세에 반발해 사퇴할 뜻을 정했다고 해도, 김 실장의 지시와 국회 운영위 일정에 부응하지 못한 것은 일종의 자중지란으로도 해석된다. 이 때문에 '청와대 인적쇄신론'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3년차 박근혜정부와 내각의 전면적인 인적쇄신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석민 기자 sukmin@msnet.co.kr

이지현 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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