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파는 노하우? 손님의 마음 읽어야죠
"언니~ 한 번 입어보세요!" 지나가는 고객을 붙잡는 말이다. 이다빈 씨는 "손님이 옷을 만지면 입어보라고 해야 한다. 손님들이 백화점에서는 편하게 입어보는데 시장에서는 옷 입어보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마침 문 블루는 겨울옷 세일에 들어갔다. 정가 11만원이던 겨울 코트가 5만원에 나왔고, 이 코트를 파는 것을 이날 목표로 세웠다.
시장에서는 '고객님'으로 표준화된 서비스를 하는 백화점에서 들을 수 없는 다양한 호칭이 들린다. '손님'은 기본이고, '아가씨' '언니야~' 등등 손님마다 다른 호칭이 붙는다. 하지만 생각만큼 손님이 오지 않았고, 20, 30대 젊은 손님은 거의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는 기자를 보고 맞은편 옷집 '아바' 사장 김기화 씨가 말을 걸었다. "아가씨, 1월은 옷가게 비수기야.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겨울옷 사입는 사람들이 확 줄어요." 4지구 3층은 40, 50대 여성 의류가 주력 품목. 또 의류 시장은 계절이 바뀌는 8월과 1, 2월이 비수기라서 젊은 손님을 찾기 더 힘들었다.
손님을 기다리며 이웃 옷집 사장님들과 친분을 쌓았다. 문 블루 옆에서 의류도매가게 '나비'를 운영하는 미모의 사장 배경숙(39) 씨는 동성로 야시골목에서 장사를 하다가 서문시장에 온 지 딱 6년이 됐다. 시장에는 별도의 탈의실이 없어 티셔츠나 니트류는 입어보기 어렵다. 그래서 손님을 보면 눈대중으로 사이즈를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배 씨는 단번에 기자의 신체 사이즈를 맞혔다. 시장 안쪽까지 그를 찾는 단골손님이 있는 데는 배 씨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한몫한다. 장사 비결을 묻자 배 씨는 "반품해도 인상 쓰지 않고 편하게 대해서 그런가?"라며 웃었다.
30년 넘게 서문시장에 터를 잡은 사람도 있다. 1980년대부터 옷장사를 해온 704호 '모델라인' 사장인 윤경숙 씨는 20대에 서문시장에 왔고, 그때부터 '엄마 옷'을 팔고 있다. 그가 젊은 시절 전통시장에 옷집을 열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윤 씨는 "큰 장(場)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옷 파는 노하우를 새내기 상인에게 전수했다. "손님을 읽어야지. 손님의 시선이 가는 옷을 따라가고, 좋아하는 스타일을 빨리 파악한 뒤 추천하면 옷을 팔 수 있어요. 아이고, 내가 큰 비밀을 알려줬네!" 이어 가격 깎는 법도 알려줬다. "예쁘게 말하면 알아서 천원, 이천원 빼준다니까. 손님이라고 '갑질'하면 절대로 안 깎아줘요." 윤 씨의 말에 이웃 상인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첫 손님이 왔다. '손님의 시선을 따라가라'는 스승님의 말씀대로 손님이 코트에 손을 대자 "5만원이에요. 어제까지 11만원에 팔았어요"라고 운을 뗐다. 손님이 코트를 입으며 "옷이 조금 큰 것 같다"고 고민할 때 "요즘은 루즈핏이 유행이에요. 단추를 잠그지 말고 스카프 하나 걸치면 딱"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와 스스로 놀랐다. 손님은 코트를 사지 않았지만 앞집 사장님은 "못 팔았어도 손님이 입어봤잖아. 옷 파는 데 소질 있네"라며 기를 살려줬다. 하지만 결국 기자는 3시간 넘게 티셔츠 하나 팔지 못했다.
4지구 상인들에게 새해 소원을 물었다. '돈 벌어서 시집가기' '아들 장가보내기' 등 각자 소원과 별개로 한목소리로 말한 소원이 있었다. "4지구는 40, 50대 중년 여성 손님이 많이 오는데 계단으로 오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2지구처럼 에스컬레이터가 생겨서 손님들이 편하게 다니면 좋겠어요." 시장 속에 삶이 있는 상인들의 소원이었다.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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