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 말로만 하던 것이 사실로 나타났을 때를 이르는 우리말 속담이다. 염원이 실현되었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일 수도 있고, 말한 것이 나쁜 것일 경우는 실제로 걱정하던 일이 일어났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일 수도 있다. 새해를 맞아 나누는 '덕담'을 두고 문득 이 속담을 떠올렸다.
'덕담'이란 남이 잘되기를 비는 말이다. 음력을 쇠던 시절 덕담은 '설' 때 어른들의 전유물이었다. 세배 후 덕담은 어른이 자손에게 하는 것이 예법이었다. 양력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덕담도 바뀌었다. 새해 들어 처음 만나는 어른이나 친지, 동료, 아랫사람들에게 스스럼 없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덕담을 나누는 것이 예의가 됐다.
덕담의 역사는 오래다. 중국 '구당서'의 '신라조'에 "신라에서는 새해 첫날을 중요하게 여겨서 서로 축하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덕담의 역사가 적어도 신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다.
조상들의 덕담은 주로 생자(生子'자식을 얻게 해 달라), 득관(得官'관직에 오르는 것), 치부(致富'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것) 등 집안 대소사에 집중됐다. '올해는 장가가라', '취직해라', '부자 되세요' 같은 요즘 덕담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우리 조상들의 덕담엔 '언령'(言靈)' 사상이 깔려 있다. 말에 신비한 힘이 있어 진심으로 '무엇이 어떻다'고 하면 그대로 실현되는 영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어른이 진심으로 빌어주면 그대로 될 것이라는 기대가 강했다. 어른이나 후손 모두에게 말이 씨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배어 있다.
육당 최남선은 한 술 더 떴다. '앞으로 이리저리 되라'고 축원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건네는 것이 덕담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장가 안 간 총각을 대하면 '올해는 장가가라'가 아니라 '올해는 장가들었다며' 하는 식이다. '돈을 많이 벌어라'가 아니라 '돈을 많이 벌었다며'가 된다.
신세대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이런 덕담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가뜩이나 결혼을 못해 주눅이 드는데 장가가라 하고 취직도 못했는데 돈 많이 벌라 하니 여간 불편한 노릇이 아닐 일이다.
그래도 덕담은 덕담이다. 조상의 지혜가 담긴 언령 효과는 믿어 볼만하다. 어른들이, 혹은 동료들이 덕담을 건네면 피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여 보자. 믿어보자. 혹 누가 아는가. 말이 씨가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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