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동에 차린 안방, 후발주자 대구의 한 방
프로야구팬들은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삼성 라이온즈 걱정'이라고들 한다. 최근 4년간 가을 야구의 승자는 늘 삼성이었기 때문이다. 뛰어난 외국인선수가 없어도, 주전 선수들이 해외 진출이나 병역의무로 빠져도 변함없었다.
그런 삼성에게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홈구장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내년이면 옛말이 된다. 웅장한 위용을 갖춰가고 있는 새 야구장(대구 수성구 연호동)은 대구를 명실상부한 '야구 메카'로 거듭나게 할 전망이다. 매일신문은 야구 선진국인 미국'일본 구장 현지답사를 통해 새 야구장의 미래를 살짝 훔쳐봤다.
◆국내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를 향해
2016년 정규시즌부터 삼성의 홈구장으로 쓰일 새 야구장은 현재 공정률이 43% 정도다.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의 건물 윤곽은 대충 잡혔다. 특히 1'3루 내야 하단석 및 본부석은 야구장다운 모습을 이미 갖춰 가슴을 설레게 한다.
국내 최초의 8각형(octagon) 외관은 2012년 12월 27일 첫 삽을 뜬 새 야구장의 외관상 가장 큰 특징이다. 하늘에서 봤을 때 거의 동심원에 가까운 기존 구장들과 한눈에 차별화되는 디자인이다. 아직은 뚜렷한 형태가 아니지만 올여름이면 중견수 뒤쪽 좌우로 각이 진 외야 펜스도 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MLB)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홈구장인 '시티즌스 뱅크 파크'와 유사하다. 삼성 관계자는 "미국 메이저리그 구장 역시 개성 없이 똑같은 외양 탓에 한때 '쿠키 커터'(cookie-cutter'과자 틀)라고 불렸다"면서 새 야구장은 독특한 구조 덕분에 구장 자체가 볼거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 야구장에서는 어느 위치에서든 마운드를 향하게 설계한 좌석에서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담장 너머로는 푸른 숲만 보이는 자연녹지지역에 자리 잡은 덕택이다. 이런 점에서는 로스앤젤레스 외곽에 자리 잡고 있는 MLB 다저스타디움과 빼닮았다.
아울러 포수가 바라보는 방향을 북동쪽으로 배치, 관람석(최대 2만9천 명 수용)에 그늘이 최대한 확보되도록 했다. 관중석과 그라운드를 최대한 밀착시켜 1, 3루 파울라인 앞까지 돌출된 '익사이팅 존' 좌석에서는 선수들끼리 주고받는 농담도 들을 수 있다. 선수가 아닌 관중 친화적 설계이다. 반면 그라운드의 선수들은 낮 경기 때 해를 바라봐야 한다. 외야와 가까운 1루 쪽 일부 좌석은 햇빛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 한여름에는 다소 더울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 도심에서 가까운 시민야구장에 비해 새 야구장의 위치는 다소 동남쪽으로 치우쳤다. 하지만 접근성은 훨씬 나아진다. 지하철 2호선 출구에서 나온 뒤 계단 몇 개만 오르면 야구장에 진입할 수 있다. 수성IC도 지척이고, 경기장 옆으로는 왕복 4차로 도로가 새로 생긴다. 대구시 건설본부 야구장건립추진단 관계자는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주출입구 계단 높이를 당초 설계보다 4m 이상 낮췄다"며 "국내 야구장 가운데 지하철과 가장 가까운 구장"이라고 말했다.
◆차별화되는 소프트웨어
대표적 스포츠 인프라인 야구장 설계에 정답은 없다. 구장의 입지, 연고도시의 특성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같은 미국 서부 해안도시이지만 시애틀 매리너스의 '세이프코필드'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펫코 파크'는 회색 계열의 단색으로 좌석을 꾸민 데 비해 다저스타디움은 1층 노랑, 2층 분홍, 3층 파랑 등으로 개성을 강조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대구가 후발주자로서 갖는 장점은 크다. 대구시와 삼성이 미국'일본 구장 및 국내 구장들을 찾아다니며 벤치마킹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새 홈 구장을 지을 예정인 NC, 올여름에 완공하는 서울 고척돔 관계자들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우선 대구 새 야구장의 전체 좌석(2만4천274석)은 하나의 색상으로 치장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와 삼성의 협의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삼성의 푸른 유니폼보다 조금 더 짙은, 감청색이 유력하다. 구장 전체에 통일감을 주고 햇빛 반사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다.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에서는 잔디와 흙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잔디 관리는 구장 관계자들이 가장 신경을 쓰면서도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일단, 삼성은 MLB 구장과 국내 골프장에서 쓰고 있는 한지형 품종 가운데 하나인 켄터키 블루그래스(Kentucky bluegrass)를 눈여겨보고 있다. 삼성 측은 "파종과 이식의 두 가지 방식이 있지만 비용이 더 들더라도 이식하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잔디 관리 전문인력도 육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새 야구장에 메이저리그에서 사용 중인 흙을 채울 예정이다. 전체 야구장의 흙에 들어가는 비용만 4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지난해 시즌을 앞두고서 시민야구장의 투수 마운드와 홈 플레이트, 1'2'3루 베이스 주변의 흙을 미국 LA산 제품으로 교체한 바 있다.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부문 중에는 펜스도 있다. 부상 방지를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실제로 지난해 시즌 중에 삼성 최형우, 한화 피에는 시민야구장 경기 도중 펜스에 부딪혀 부상을 입기도 했다. 삼성 측은 이와 관련 "완충재 두께를 15㎝ 이상으로 해 국내 야구장 관리지침을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펜스 겉 부분 원단도 잘 찢어지지 않는 최고급품을 채택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새 야구장 우중간에 설치될 전광판은 가로 36m 세로 20.4m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다만 미국산 제품 대신 정부 조달시장에 참여하는 중소기업 제품을 도입할 가능성이 크다. 새 야구장이 국비 지원을 받는 데 따른 것이다.
◆동료들과 가면 바비큐석, 가족 나들이 땐 잔디석
야구장을 직접 가야만 야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편안한 거실 소파에서, 때로는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TV 중계로 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새 야구장에 다양한 이벤트석이 마련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기에만 집중하고 싶은 관람객은 일반적인 내'외야석을 선택하면 된다. 단 관람객이 선호하는 내야석이 전체의 87%인 2만1천여 석이다. 직장 동료'친구들과 단합이 주목적이라면 고기를 구워가며 볼 수 있는 바비큐석을 고르는 게 낫다. 또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나들이객들은 잔디석'샌드파크에 앉는 게 도움이 될 듯하다. 주위에 신경 쓰지 않고 목청껏 응원하고 싶은 열성 관중에게는 외야에 배치된 서포터스석(입석)이 최고다. 심지어 1루 측 펜스 너머 언덕에 조성되는 산책로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도 있다.
무려 34종의 이벤트석을 운영 중인 일본 히로시마 토요카프 구단 관계자는 "관람객의 취향을 반영하다 보니 개장 당시보다 좌석 종류가 훨씬 늘었다"며 "고객들이 테마파크 같은 느낌을 받도록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좌석 가운데 단연 압권은 인천 문학야구장을 통해 국내에 스카이박스로 알려진 '스윗 룸'(Suite room)이다. 대구 새 야구장에는 15~30명이 식음료를 즐기며 야구를 관람할 수 있는 룸 30개가 생긴다. 물론 국내 최고 수준으로 꾸며진다. 이용 가격은 정해지지않았지만 기업체들이 주요 마케팅 대상이다.
럭셔리 콘셉트는 선수들의 공간인 클럽하우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실 대구시민야구장은 삼성 선수들조차 들어가기를 주저할 정도로 낙후돼 있다. 배수 문제로 여름철에는 악취를 풍기기도 한다. 이에 비해 새 구장의 클럽하우스는 인테리어만큼은 메이저리거가 부럽지 않은 수준이 될 전망이다. 클럽하우스 안쪽에는 워밍업 공간과 식당도 갖춰지며 선수들은 전용 주차장을 통해 바로 입장할 수 있다. 시공사인 대우건설 관계자는 "1루 측 더그아웃 뒤편에 조성된 원정팀 라커도 크기만 조금 작을 뿐"이라며 "홈팀 클럽하우스가 더 넓고 화려한 것은 세계 어느 야구장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상헌 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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