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깊은 마포 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성 듀엣 가수 은방울 자매의 노래 '마포종점'에는 왠지 모를 비감(悲感)이 서려 있다. 종점이라는 이미지가 전하는 고유의 정서 때문일 것이다. 가던 길의 마침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내려서야 하는 종점. 그것은 어떤 행로의 마무리이며 어떤 대상과의 이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 해의 마지막 태양을 보며 포항 구룡포 바닷가를 시적 공간으로 한 어떤 시인의 '종점다방'은 그런 감회의 분수령을 역설적으로 노래한다. 막차가 옅은 훈기를 머금은 채 멈춰선 해거름의 고즈넉한 해안 마을 종점 다방. 게딱지처럼 엎드린 성긴 삶들이 커피 한잔에 의지하는 곳, 그러나 차가운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종점 다방. 시인은 그곳을 '퇴락을 꿈꾸는 종점'이라고 표현했다.
격동의 1980년도에 방영된 MBC 주말연속극 '종점'은 당시 젊은이들의 이기적인 세태를 그렸다. 얼마 전에 타계한 탤런트 김자옥이 젊은 시절 출연했던 이 드라마의 제목을 '종점'이라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 산업화가 초래한 인간성 상실의 귀결을 '종점'이란 단어로 절박하게 드러낸 것일까. 가수 김추자의 독특한 음색을 타고 흘러나왔던 이 드라마의 주제곡은 그 이상의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내 떠나온 곳 그 어디인지 몰라도, 내 돌아갈 곳 그 어디인지 아름다워….'
물질 만능의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갑남을녀의 삶이 그럴 것이다. 시쳇말로 사랑에 속고 돈에 울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종점에 이른다면, 그 허무한 여정을 무엇으로 달랠 것인가. 종점이라는 게 유한한 인생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어서 사람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꿈꾸는 모양이다.
법정 스님은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이정표를 잃은 채 표류하는 현대인들에게 그때그때 삶의 매듭을 짓고 새로운 출발을 여미는 길을 알려준다. 아름다운 마무리란 우선 자신과 주변에 대한 진정한 반성적 고찰일 것이다.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새롭게 추구할 것은 또 추구하면서, 삶이란 그렇게 마지막 종점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닐까. 다시 한 구간의 행보를 마무리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과 공간. 지금 우리는 그렇게 또 한 해의 종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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