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층짜리 목욕탕 화재의 위력은 상상 밖으로 컸다. 먼저 큰 폭발음이 재난의 시작을 알렸다. 사람이 살면서 들어볼 가장 큰 굉음이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7, 8차례 큰 폭발음이 뒤따랐고, 파편이 날카로운 속도로 흩뿌려지면서 애꿎은 행인의 부상도 속출했다.
먼저 도착한 두 대원은 인명대피의 급소로 판단되는 2층으로 곧장 진입하였다. 외부로 개방된 2층의 복도 끝.
"옆으로 비켜서!"
김 반장이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문을 열자 뜨거운 화염이 일시에 탈출하며 불바람을 일으켰다. 실내로부터 기름 타는 냄새에 시신 타는 냄새가 섞여 나왔다.
"저 불 그림자 좀 봐라. 엄청나게 길고 곧은 것이 화점(火點)이 멀다는 것이다. 화점은 1층이거나 지하데이. 저 안에 바닥은 마카 붕괴되고 허공인기라."
김 반장은 관창의 끝을 현관 안까지 집어넣어 건물 바닥을 향해 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 탓에 두 사람의 허리가 부자연스레 구부러지고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화염의 역공까지 피해 나가느라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다. "니 저 끝에 가면 구조대 와가 있을 끼라. 로프 좀 얻어오이라. 로프로 관창 좀 결착해가 작업해야 하는 기라."
반대편의 복도 끝은 아수라장이었다. 난간에 걸린 사다리 앞에 10여 명이 탈출 순서를 기다렸고, 위층에서 알몸으로 뛰어내리는 남자도 보였다. "선아야! 선아야! 우리 선아 좀 찾아주이소! 여섯 살짜리라예…. 아이고 선아야!" 난리통에 딸아이를 잃은 아주머니가 반 실성한 목소리를 외쳐대고 있었다.
로프와 예비용기 두 개까지 들고 관창으로 돌아온 재혁은 김 반장이 현장에서 사라진 것을 알았다. 잠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일이 우선이다. 소방학교에서 배운 대로 재혁은 적당한 구조물을 찾아 로프로 관창을 결착하고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화원(火源)을 향해 끈덕지게 물을 뿌려댔다. 머리 위에서 작은 난간을 타고 푸른 심지를 지닌 화염이 불춤을 추더니 자신의 숙주였던 콘크리트 구조물을 아래로 뱉어냈다. 재혁은 자포자기의 심정에 접어드는 것처럼 관창에 매달렸고, 머리가 멍해지더니 이대로 잠들어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였다.
홀로그램처럼 고향집 앞으로 소환된 재혁은 비릿한 바닷바람부터 맛보았다.
재혁은 마당으로 성큼 들어섰다. 툇마루에 앉아 낚싯대를 손질하는 아버지가 보였다. "아부지요! 아부지요!" 온 힘을 다해 아버지를 부르려 하였지만 목청은 터지지 않고, 무언가 몸이 덜컹거리는 것을 느꼈다. 뼈마디가 쑤셔왔다.
들것 위로 어둑한 하늘이 바로 보였다. 구급차로 이동하는 들것을 따라오면서 김 반장이 손을 뻗어왔다. 재혁은 뿌리쳤다. "됐심다. 치우소!" 밤은 쏜살같이 달려와 도심의 야경이 구급차 차창으로 스며들어 왔다. 머리를 다쳤는지 졸음이 쏟아졌다. 구급대 서희 반장이 나긋나긋 말을 걸었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처음 출근한 날 재혁은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사무실은 동안거(冬安居) 중의 절간처럼 조용했다. 김 반장과는 일절 말을 섞지 않았다. 그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불이 무서워 피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재혁이 사무실의 개인 물품을 정리하고 있는 오후. 웬 여인이 어린 딸아이의 손을 잡고 진눈깨비를 털며 사무실에 들어섰다. 손에는 과일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야가 그때 간교? 아이고, 진짜 이뿌데이! 그래 병원에는 가봤나?" 아이는 목소리 큰 김 반장이 무서웠던지 울고 말았다. "애가 부끄러움이 많아서요, 선아야, '아저씨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해야지. 이 아저씨가 너 살려주신 은인이신데?" 선아가 울음을 그치고 소방차를 구경하러 차고로 간 사이 김 반장의 무용담이 시작되고 사무실은 갑작스레 활기를 띠었다.
"한참 불 끄고 있는데 자가 복도 끝 꺾어진 작은 공간에 쪼글치고 있는 거 보고 첨에 얼마나 놀랬는지….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았지요. 엄마가 안 나온 줄 알고 우는 기라예. 그래가 안 갈라 카는거 억지로 데리고 갔지예. 아이고, 자 때문에 우리 후배랑 싸워가지고…. 아, 아입니더."
재혁은 너스레를 떨던 김 반장의 목소리 끝이 붉게 뜨거워지는 것을 알아챘다. 김 반장의 눈 깜박임도 잦아지는 것 같았다. 모녀가 돌아가고 재혁이 먼저 침묵을 깼다.
"아. 그 사투리 좀 고치소, 쪽 팔리 죽겠심다. 무식한 거 티 내는 것도 아이고."
"니 머라캤노, 바닷가 촌놈이 누구보고 사투리 쓴다카노? 이기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신문을 보고 있던 팀장이 정말 두 사람이 싸우는 줄 알고 말리려 벌떡 일어섰다.
"카지 말고 이따 퇴근하면서 서희 선배랑 같이 쏘주나 한잔 하입시다. 김 반장님."
바깥에는 진눈깨비가 크리스마스트리의 솜털장식처럼 커져서 내리고 있었다.
김세준 대구중부소방서 남산안전센터 소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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