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베들레헴의 구유에로

입력 2014-12-27 07:14:52

메리 크리스마스! 얼마 전 성탄절이었습니다. 성탄절이 되면 교회는 하느님의 아드님이 인간으로 태어나신 그 때 그 모습을 구유로 꾸밉니다. 구유는 그저 성당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외아드님이 인간이 되어 탄생하신 베들레헴의 외양간으로 우리를 초대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행에 지쳐있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은 마땅한 잠자리도 찾지 못해 가축들이 있는 외양간에 들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이신 성자께서 인간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가축들의 먹이가 놓이는 구유에 뉘어졌습니다. 성자의 탄생, 즉 하느님이 이 땅에 내려오신 강생은 화려한 궁전에서 축하와 축복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가 잠든 고요한 밤에, 가축들이 머무는 아주 초라한 곳에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분이 당신 친히 창조하신 피조물이 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지니신 분이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야 할 인간, 이 세상에 살다가 언젠가 이슬처럼 사라져버릴 인간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온 것은 당신의 영광과 권능을 드러내시려는 것이 아니라 죽을 운명에 놓인 인간을 당신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초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오직 인간을 위하여 당신 아들을 이 세상에 파견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베들레헴의 구유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그분의 한없는 자비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세주의 탄생 소식은 율법과 예언서를 잘 알고 있는 율법학자들이나 이스라엘의 사제들이 아니라 비천한 목동들에게 먼저 전해졌습니다. 이들은 깊은 밤에 천사들이 전해주는 구세주 탄생의 소식을 듣고 그저 놀라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구세주를 찾아 나섰습니다. 마침내 이들은 누추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여 있는 아기 예수님을 경배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참으로 묘하신 분이십니다. 똑똑하고 권력 있고 부유한 사람들에게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전해주지 않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들에게 구세주 탄생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뉘여 있는 구유 둘레에는 참으로 겸손한 나자렛 처녀 마리아와 의인인 요셉 그리고 가난한 목동들과 가축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구유의 모습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낮추심과 가난한 이들을 초대하시는 무한한 사랑을 가진 하느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온 우주의 창조주가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시고 인간을 위해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인간을 찾아오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당신 자신을 무한히 낮추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은 참으로 겸손한 나자렛 처녀 마리아, 의인의 요셉과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목동들과 가축들 사이 즉 보잘 것 없는 이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되신 하느님을 알아보도록 초대받은 사람들은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입니다.

성탄시기에 베들레헴의 구유에로 돌아갑시다. 물질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그곳으로 돌아갑시다. 그곳에서 우리는 비천한 모습으로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고, 가난하고 단순한 믿음과 삶을 통해 구세주를 만날 수 있습니다. 겨울의 삭풍이 사람들을 움츠리게 만들고 각박한 사회가 우리 삶을 조여 올수록 우리는 베들레헴의 구유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겸손 그리고 거룩한 가난을 배우고 실천할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으며 지구촌에는 온기와 평화가 넘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명현 대구 비산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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