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으로] 스마트폰 따라 가버린 독서

입력 2014-12-27 07:37:36

가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다 보면 늘 엇비슷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대다수의 승객들은 단정히 앉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여학생들은 대개 문자를 주고받고 남학생들은 줄기차게 게임을 하고 직장 여성들은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거나 쇼핑을 하고 남성들은 정보나 기사를 검색한다. 촘촘히 붙어 앉은 틈서리에 궁상맞게 앉아 단전에 깍지 낀 두 손을 모으고 멀뚱멀뚱 맞은편을 바라보거나 묵상에 잠겨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전에는 더러 책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지만, 요즘엔 이마저도 사라졌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빚어진 풍경이다.

현재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급률은 세계 최정상급이다. 구글코리아가 지난해 전국 18∼64세의 성인남녀 1천 명의 스마트폰 이용 행태를 조사한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73%로 2년 전 27%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구글이 조사한 대상국 43개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스마트폰 사용량에서도 82%가 매일 이용한다고 답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국민의 독서량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국민 독서 실태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한 달 평균 독서량은 0.8권으로, 미국(6.6권) 일본(6.1권) 프랑스(5.9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유엔 191개국 중 166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묘하게도 매년 곤두박질 치고 있는 독서량이 스마트폰 보급률과 반비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은 이러한 추세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서 선진국인 독일에서조차 독서 실태 조사에서 독서 여부와는 상관없이 괴테의 작품 하나를 들어 보라 했더니, 세 사람 중 한 명은 응답하지 못했고, 응답한 대상자 중 절반은 '파우스트'를 들었다고 한다. 이는 상당수의 응답자가 '파우스트'를 읽어서라기보다 원체 유명한 작품이니까 들은 풍월로 알고 있어서 응답했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독일에서조차 엄숙하고 깊은 사고를 요하는 고전은 읽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스마트폰이 독서를 현저히 저해했다는 증거는 없다. 스마트폰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는 독서 저해 요소가 지천으로 늘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독서에 일정 부분 기여한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포함한 전자매체를 이용한 독서는 단편적인 지식이나 당장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얻는 데는 유용할지 모르나 발산적 사고를 심화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스티브 잡스가 자기 자녀에게 평일에는 스마트폰 사용을 엄히 금했고 주말에만 제한적으로 허용했다는 것은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이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시대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독서와 상생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최근 방송에 의하면 대화를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들어갈 때 스마트폰을 맡겼다가 나올 때 찾아가는 새로운 카페가 생겼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이런 아이디어를 참고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을 찾는 방법일 수도 있다.

내년이면 책의 해를 맞은 지도 20년이 넘는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책에 대한 인식이나 독서 환경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나빠졌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살기 위해 밥을 먹어야 하듯 물질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정신적 풍요로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데는 독서보다 좋은 것이 없다. 독서가 필요한 이유다.

매일신문이 조간으로 전환하는 희망찬 원년, 삶의 풍요로움을 위한 독서도 함께 부흥하는 역사적인 해로 영원히 기록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본다.

이연주/소설가·정화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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