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달성 꽃피다] <12·끝> 벽화마을로 재탄생한 마비정

입력 2014-12-26 07:14:35

산골 오지 마비정 마을에 구름인파 "벽화때문에 난리났습니더∼"

마비정 벽화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줄을 잇고 있다. 달성군 제공
마비정 벽화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줄을 잇고 있다. 달성군 제공
마비정 벽화마을에 세워진 느림보 우체통. 편지가 1년 후에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에게 배달된다. 달성군 제공
마비정 벽화마을에 세워진 느림보 우체통. 편지가 1년 후에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에게 배달된다. 달성군 제공
마비정 벽화마을 농촌 체험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두부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달성군 제공
마비정 벽화마을 농촌 체험장을 찾은 어린이들이 두부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달성군 제공

낙후지역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마을재생' 개념이 도입된 뒤 지역 곳곳에 벽화마을이 생겨나고 있다. 벽화마을은 그저 단순한 재개발, 재건축과는 확연히 다르다. 기존 마을의 미관을 크게 고치는 등 지역적 특색을 살리는 문화 아이템 형태로 변화되고 있다. 게다가 일부 마을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연계해 짭짤한 소득을 올리는 등 '브랜드 마을'로 부각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새마을운동도 비껴간 초라한 마을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속칭 마비정 마을. 화원의 남평 문씨 세거지에서 약 2.5㎞ 정도 올라가면 비슬산 자락이 병풍처럼 휘감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겨울철에는 오전 9시에 해가 떠서 오후 3시가 되면 사라지는 군 내에서는 하늘 아래 첫 동네로 통한다. 비탈진 산허리에 자리한 집들은 거의가 돌담과 흙벽으로 싸여 있다. 마을 안길은 마치 등산로처럼 가파르다. 꼬불꼬불 휜 골목길엔 사람들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낯선 사람이 들어서면 여기저기서 개들만 짖어댄다.

전체 35가구,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모여 사는 마비정 마을의 3년 전 모습이다. 오지 중의 오지였던 마비정 마을에는 이젠 봄'가을 관광시즌이 돌아오면 평일에는 하루 200여 명, 주말에는 2천여 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주민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먹거리와 농산물 등을 판매해 월 5천여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부자마을로 재탄생했다.

2011년 5월 어느 날 김문오 달성군수는 우연히 마비정 마을을 찾게 된다. 1970년대 전국을 휘몰아친 새마을사업도 이곳 마비정 마을만큼은 비껴간 듯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마비정 마을을 다녀온 김 군수는 며칠 동안 생각에 빠졌다. 결론은 '벽화마을'이었다. 원시에 가까운 울퉁불퉁한 돌담과 흙벽, 마비정 마을이 간직한 말(馬)의 슬픈 전설, 돌배나무와 느티나무의 연리목(連理木), 100년 수령의 살구나무와 옻나무, 거북바위 등 지천에 널린 스토리텔링에 벽화를 입힌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역발상적 마케팅'이다. 때로는 거꾸로 뒤집어보면 성공이 눈앞에 보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달성군은 마비정 벽화마을 사업을 정부의 '도시활력화 공모사업'으로 신청하게 되고 결국 11억원의 국비를 지원받게 된다. 주요 사업으로 벽화 그리기를 비롯해 뒷산 등산로 정비, 체험전시장, 농산물 판매장 조성 등이 정해졌다.

◆벽화 그리고, 살구 심어 재탄생

벽화 그리는 작업은 이곳 화원읍 출신의 이재도(60) 화백이 맡았다. 이 화백은 2012년 5월부터 8월까지 꼬박 4개월 동안 벽화 그리기 작업에 매달렸다.

작업기간이 한여름철이라 팥죽 같은 땀을 흘려야 했다. 이 화백은 고향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페인트 값만 받았다. 순전히 노력봉사를 통한 재능기부인 셈이다.

이 화백은 마비정 마을의 벽화가 외부로 알려지면서 일약 마을벽화 전문화가라는 명성을 얻어 다른 마을에서 초빙해갈 정도가 됐다.

처음에는 마비정 마을주민들 대부분이 벽화마을 조성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오면 여름에 옷도 제대로 못 벗고 지낸다는 불평. 여기에다 소음, 쓰레기, 교통난, 사진 촬영에 의한 사생활 침해 등 별의별 얘기가 쏟아져 나왔다.

달성군이 마을 내 김영학(75) 씨 소유의 100살 된 살구나무를 테마로 '살구마을'을 만들기 위해 동네어귀에 살구나무 500그루를 심었다. 당시 일부 주민들은 손사래를 치며 "우리 밭둑에는 살구나무를 심지 말라"고 반대하기도 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군청 직원들은 "예부터 살구 열매가 많이 달리는 해에는 병충해가 없어 풍년이 든다. 살구나무가 많은 마을에는 전염병이 못 들어온다"는 등의 얘기로 설득해 가면서 살구나무를 심기도 했다.

마비정 마을의 살구나무는 식수된 지 이제 3년 차에 접어들었다. 다가오는 새해 춘사월에는 온 동네에 연분홍으로 물든 살구꽃이 전국에서 마비정을 찾아온 관광객들을 맞이하게 된다.

특히 마을 복판 길가에 우뚝 선 '사랑나무'로 알려진 수령 100년의 돌배나무와 느티나무의 연리목(連理木)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을의 맨 끝자락에 자생하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둘레 1m, 높이 15m에 달하는 수령 60년의 옻나무도 볼거리 중 하나다.

대한민국 장승 명인인 김종흥 씨가 마을 입구에 마을의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높이 5m, 직경 50㎝의 대형 장승을 세워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더욱 적극 나서

마비정 벽화마을 알리기에 군 내 각 기관단체들도 발벗고 나섰다. 특히 농협의 경우 농촌사랑 자매결연을 통해 팜스테이마을 지정, 전국 농협망을 통한 홍보, 농촌 체험 프로그램 개발 지원 등 다각적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마비정 벽화마을이 점점 알려지자 관광객들의 발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반응이 영 딴판으로 변했다. 특히 마비정 마을의 최고 어른인 석윤수(72) 노인회장과 김달종(56) 마을이장이 앞장서 이끌어 가고 있다.

할머니들은 자기 집 채소밭에서 가꾼 각종 나물을 들고 나와 골목길에 난전을 펼쳤다. 할아버지들은 공동으로 마을 구판장을 운영한다. 또 집이 넓은 주민들은 간이식당을 차려 국수와 막걸리, 각종 전 등을 팔아 소득이 짭짤해지자 그제야 이구동성으로 "담벼락에 그린 벽화 때문에 먹고살게 됐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또 마을의 아낙네들은 농촌 체험장에서 어린이들을 비롯한 단체 관광객들에게 인절미 떡메치기, 두부 만들기 등을 통해서도 소득을 올리기도 한다.

석 노인회장은 "처음에 벽화마을 사업을 반대하던 몇몇 사람들이 이제는 소득사업에 오히려 더 열을 올리고 있다. 그동안 마을을 찾아오는 외지 사람이 한 달에 10명도 안 되는 오지마을이었다. 벽화마을이 되고부터는 사람 사는 동네가 됐다"고 했다.

사실 그동안 마비정 마을 주민들이 집이나 땅을 팔려고 내놔도 사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 벽화마을이 되고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부동산 가격이 무려 서너 배씩이나 올랐고, 이마저도 매물이 나오기 무섭게 팔려나가는 형편이 됐다.

달성 김성우 기자 swkim@msnet.co.kr

※마비정(馬飛亭) = 옛날 한 장군이 활을 들고 애지중지하던 말에게 "화살보다 늦게 도착하면 살려두지 않겠다"며 멀리 앞산을 향해 활 시위를 놓았다. 빠른 화살을 따라잡지 못하던 말은 달리던 중간에 쓰러진다. 장군은 약속대로 말의 목을 칼로 베고 만다. 훗날 마을 사람들이 그 자리에 정자를 지어 말을 추모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