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말경 정윤회가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핵심 3인방을 비롯한 '십상시'(十常侍) 와 회동하고 국정에 개입했다는 내용이 기재된 청와대 동향보고서가 세상에 알려졌다. 그 문건은 정윤회가 십상시의 좌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핵심 비서관 3인방은 청와대 '문고리 권력자'로 알려져 있다. '십상시'는 한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던 장양 등 환관 10명을 가리킨다. 그들은 황제의 조서를 위조하기도 했고, 선비들을 잔인하게 숙청했다. 진나라 환관 조고는 진시황의 유서를 조작하여 무능한 호해를 황제로 앉혔다. 중국사에 있어서 환관은 어두운 권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헌부, 사간원 간관들은 "왕의 역린을 건드리고 곧은 자를 추천하고, 굽은 자는 내쫓는다"라는 정신으로 일했다. 그래서 환관들이 득세할 수 없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 조선시대 간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있는가? 박 대통령은 이해할 수 없는 인사를 많이 했다. 그래서 비선조직이 있다는 의심도 받았다.
검찰은 청와대 문건의 신빙성 등에 관하여 수사하고 있다. 그런데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작년 8월 박 대통령이 수첩을 꺼내놓고 정윤회의 딸과 관련이 있는 승마협회를 감사했던 간부들을 거명하면서 "이 사람들 참 나쁜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라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와 관계없이 국민들이 그 문건을 100% 터무니없는 것으로 볼 수 있겠는가?
박 대통령은 7일 청와대 오찬장에서 새누리당 의원 60여 명을 향하여 그 문건은 '찌라시' 수준, 즉 허위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것은 박 대통령이 검찰과 국민을 향하여 의심하지 말라고 명령(?)한 것 아닐까? 그런데 13일 문건 유출 혐의를 받고 있던 경찰관 1명이 자살했다. 그는 유서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직원이 회유했다는 것을 암시했다. 회유라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뒷거래가 아닌가?
박 대통령은 국무총리, 장관, 수석비서관 등의 대면보고를 꺼리고 서면보고를 선호한다고 한다. 그리고 '정시 출근'의 개념마저 없어 보인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보고서는 관저에서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의 접근 통로가 폐쇄적이면 문고리 권력은 강해질 수밖에 없고, 각 부처의 생명력은 저하될 것 아니겠는가? 박 대통령은 한 번 싫은 소리를 들으면 두 번 다시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통치는 '밝은 통치'가 아니라 '어두운 통치'로 보아도 좋겠는가?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소위 '땅콩 리턴 사건'은 자본권력의 어두운 면을 상징한다. 뉴욕 공항에서 이륙을 위해서 준비 비행을 하던 비행기를 되돌려서 문을 열게 한 그녀의 권력은 밝은 권력이 아니지 않은가? 그녀는 국토부의 조사를 받을 때 대한항공 사장과 전무를 대동했다. 그들은 사무장과 여승무원에게 거짓진술을 강요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들은 조현아의 환관들인가?
박 대통령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조현아는 태어나는 순간 자본귀족이었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주인은 국민과 고객(소비자)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러한 권력은 국민들이 있는 햇빛 아래로 나와야 한다.
박 대통령은 먼저 국민들의 말을 경청하고 국가개조(개혁) 작업에 시동을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재벌은 족벌체제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권력과 자본은 국민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추운 날 나라에 엄습하고 있는 '십상시' 의혹과 세습자본주의의 오명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금년 갑오년에 하늘은 우리에게 약 60년 동안의 적폐를 청산할 것과 정치권력, 자본권력이 밝은 모습으로 환골탈태하기를 명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공자는 "인간의 삶은 원래 정직한 것이다. 정직하지 않으면서도 살 수 있는 것은 요행히 화를 면하고 있을 뿐이다"(人之生也 直 罔之生也 幸而免)라고 말했다. 밝고 투명한 권력이 적정하게 작동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용대(변호사·경상북도공직자윤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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