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영의 근대문학을 읽다] 1920년대 조선과 '처녀'에 대한 히스테리

입력 2014-12-20 07:27:33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에는 위기에 처한 여성이 서슬 퍼런 표정으로 은장도를 꺼내 드는 장면이 간혹 등장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 여성은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 은장도로 자결을 시도한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은장도에는 정절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불사했던 여인들의 고단한 삶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정절'(貞節)과 '정조'(貞操)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정절은 '절개, 지조'의 의미이며, 정조는 '성적 순결'의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절은 '정신, 즉 마음'의 의미가 강한 것인 반면 정조는 '육체'의 의미가 강한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근대 초기 자유연애가 등장하고 여성의 재혼이 허용되기 시작하면서 정절이라는 용어는 은장도나 열녀문과 함께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져갔다. 그렇다고 여성들의 삶이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었다. '처녀'라는 용어가 '정절'이라는 용어를 대신해서 등장한 것이다. 이때 사용된 '처녀'라는 용어는 내용 면에서 큰 변화가 있었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의 여성을 총칭하였던 종래의 의미가 사라지고 대신 '성적인 경험이 없는 육체적 순결성'을 지닌 여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한정되었다.

실제로 1920년대 조선에서는 '처녀'에 대한 찬탄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처녀를 존중하라'는 내용의 논설까지 유력 잡지에 등장할 정도로 '처녀'에 대한 사회적 애호는 지극했다. 물론 그 처녀는 언제나 '의학적'으로 처녀성이 보증된 자, 말하자면 남성과의 성적 경험을 지니지 않은 '여성'에 한정되었다. 여기에는 해부학 등의 근대의학이나, 엄격한 청교도주의, 일부일처제 같은 근대적 결혼관 등 다양한 근대적 의식들이 저마다 조금씩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현진건의 '유린'(蹂躪'1922)은 순결한 한 여학생이 예기치 않게 정조를 유린당하는 것을 테마로 한 미완(未完)의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여주인공은 정조를 유린당하는 순간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장밋빛이 돌던 뺨은 송장과 같은 납빛이 도는 등 처녀성을 상실한 여성은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존재로서 묘사된다. 은장도로 목숨을 끊지 않아도 처녀성을 상실한 순간부터 사회적으로 그 여성의 죽음이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의 정조유린이라는 폭력적인 내용의 소설이 1920년대 조선에서 봇물 쏟아지듯 등장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1920년대 조선 문단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한 처녀성 유린 모티프는 서구적 근대를 성급하게 수용한 탓에 벌어진 일종의 촌극이었다. 1920년대의 조선은 서구로부터 '처녀'에 대한 찬탄과 숭배의 태도는 열심히 수용했지만, 숭배의 이면에 깃들어 있던 여성 존중의 의식까지는 제대로 수용하지를 못하였던 것이다. 그 점에서는 이광수, 김동인, 나도향 누구 하나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의 근대문학 작가들이 현재에 대한 분명한 성찰 없이 미래로 뛰어간 순간, 역시나 대면하게 되는 것은 더 남루한 현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이해하기에 우리의 근대문학 작가들에게 시간적 여유는 너무나 부족했다. 이는 단지 작가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의 근대 자체가 이처럼 여유 없이 조급하게 수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정혜영 대구대 기초교육원 강사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