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북한에서 살 생각은 없는 종북주의자들

입력 2014-12-18 11:11:12

지난 세기 소련을 이상향이라고 찬양한 서방의 유명 인사들은 소련으로 가지 않았다. 그들은 스탈린에 의한 국가 폭력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파리 센강 좌안의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며 소련 찬양문을 썼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처럼 '악의 근원'으로 낙인찍은 자본주의 진영에 남아 자유와 풍족한 삶을 만끽했다.

이들은 공산주의 국가의 진실이 알려져도 자신의 잘못된 신념을 고치지 않았다. 대신 영국의 좌파 역사가 E. P. 톰슨처럼 "역사가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시기에서 벌어지는 혼란"이라고 얼버무리거나 사르트르처럼 "스탈린 동지는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갖고 있으므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다. 진실과 대면하고 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가련한 몸부림이었다. 이러한 위선적 태도를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정신의 외설'이라고 했다.(정확하게는 1930년대 모스크바 시범재판을 그대로 본뜬 헝가리의 시범재판을 정당하다고 한 프랑스 공산당을 겨냥한 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역사는 지난 세기 유럽 지식인들의 위선을 21세기 한국땅에서 신은미와 황선 두 사람에게 되풀이하도록 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 두 사람이 지난 세기 유럽 지식분자들보다 더 많은 진실을 알 수 있는 조건에 있으면서도 그들과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300만 명을 굶겨 죽였고, 나아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많은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으며 소련의 '굴라그' 뺨치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가공할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뉴스도 아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른바 '종북 토크쇼'를 통해 북한체제가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북한 주민이 희망에 차 있다고 했다. 물론 북한 당국이 그들에게 보여줬던 북한은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탈북자 여성들이 "신 씨가 그렇게 북한에 대해 잘 안다니 북한에서 직접 살다가 목숨을 걸고 탈출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눠보자"며 '끝장토론'을 제안했으나 신 씨는 거부했다. 그 이유가 기가 막힌다. "누가 본 북한이 맞는지는 논쟁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뒤집어 얘기하면 진실을 알고 진실을 대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비겁함은 국내외를 통틀어 이른바 '종북주의자'들의 공동 자산이다. 그들은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북한의 '불편한 진실'이 드러날 때마다 "북한의 실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지난 2012년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의 발언으로, 종북주의자들의 '정신의 외설'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탈북자 증언을 통해 북한 주민의 실정이 폭로됐다'는 지적에 "남에서 북으로 가는 사람이든, 북에서 남으로 가는 사람이든 자기가 있던 곳에 대해 좋게 얘기할 순 없다"고 했다.

재미있는 것은 종북주의자들이 북한을 그렇게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면서도 북한에서 살려고는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은미 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회가 되면 다시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면서도 거기서 살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북한이 그렇게 희망에 넘친 곳이라면 당연히 거기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 텐데 말이다. 여기서 역사의 반복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유럽의 좌파 인사들도 소련에서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명문 케임브리지대학 출신으로 영국 외무부나 정보기관 등에서 암약하며 엄청난 양의 비밀을 빼돌려 소련에 넘긴 '5인의 고리' 중 한 사람으로 유일하게 소련으로 망명하지 않은 앤서니 블런트의 말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의 간첩행위가 발각되자 소련 망명을 권유하는 KGB 공작원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해해주시오…나는 당신네 국민이 어떻게 사는지 아주 잘 알고 있소. 확실히 말하건대 나는 그렇게 사는 것이 대단히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오."('나의 케임브리지 동지들' 유리 모턴) 그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와 6촌뻘인 명문 귀족 출신으로 세계적인 예술사가이자 영국왕실의 미술품관리책임자였다. 그런 기득권을 포기하고 소련에서 사는 것은 끔찍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은미 씨가 북한에서 살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 블런트가 소련으로 가지 않은 이유와 같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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