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를 이은 대통령의 명암

입력 2014-12-17 11:17:53

존 애덤스와 존 퀸시 애덤스는 미국 최초의 부자(父子) 대통령이었다.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는 미국 독립과 건국의 주역 중 한 명으로서 학식이 풍부하고 사려 깊은 인물이었다. 미국의 독립을 방해한 프랑스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등 건국의 초석을 다졌다. 그의 아들 존 퀸시 애덤스는 24년 뒤 6대 대통령으로 취임, 도로와 운하 건설, 공유지 개발, 국립대학 설립 및 과학기술 지원 등 국가 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실행했다. 애덤스 부자는 걸출한 정치인이자 지도자로 꼽히고 있다.

160년 후 등장한 조지 H.W. 부시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자는 애덤스 부자와 다른 평가를 받는다. 아버지 부시는 걸프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경제 정책의 실패로 단임에 그쳤고 아들 부시는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후 전쟁 포로들을 가혹하게 다루도록 방치한 것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최근에 아들 부시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고문 사실이 밝혀져 부시는 더욱 곤경에 빠졌다. 아들 부시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악의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아버지가 대통령이라면 그 아들과 딸은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권력에 비교적 쉽게 다가설 수 있다. 아시아에서도 이런 현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대를 이은 정치 지도자가 모두 성공적이지는 않다. 필리핀의 디오스다도 마카파갈 대통령과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아버지 마카파갈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으로 동남아가 연쇄적으로 공산화할 위기에 처하자 강력한 친미반공 정책을 펼쳐 필리핀의 공산화를 막았고 부패 척결에 매진했다. 그러나 그의 딸 아로요 대통령은 자신과 남편의 수뢰'이권 개입은 물론 정부의 부정부패, 민생경제 악화 등 실정을 거듭, 민심을 잃었다.

2대에 걸쳐 정치 지도자로 나선 박근혜 대통령 역시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 덕을 봤다고 할 수 있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프리미엄 덕분에 정치 입문 이후 일정 정치 세력의 리더가 될 수 있었고 여당과 야당 지도자로서 위기를 극복해내는 능력도 선보였다. 결국, 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국민 계층의 지지에 힘입어 최고 권좌에까지 올랐다고 할 수 있다. 국가 경제를 일으킨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니 그만한 역량을 지녔으리라고 본 것일 게다. 그 자신, 혹은 주변에서 쌓아올린 '원칙과 신뢰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도 청와대에 입주하는 데 한몫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는 실망스러울 뿐이며 앞으로도 큰 기대를 하기 어려워 보인다. 권위적 통치를 일삼던 아버지처럼 민주적 의식과 소통 능력이 부족해 보이고 아버지가 구사했던 뛰어난 용인술과 국정 장악력은 갖추지 못한 것처럼 여겨진다. 먼저, 부도덕하고 능력이 떨어지는 인물들을 요직에 기용하는 인사 난맥상이 개선되지 않고 되풀이되었다.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냈던 '경제 민주화'와 '국민 대통합' 공약은 헌 칼 내려놓듯 슬며시 외면하고 내팽개쳤다. 외국의 평가에서 나타나듯 언론 자유를 후퇴시켰고 '세월호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무책임한 면도 드러냈다. 최근에는 측근 참모 3인방의 '국정 농단' 논란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사람을 제대로 쓰고 국정을 제대로 장악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언급하면서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고 해 정국이 혼란스러우니 위기를 타개할 지혜는커녕 국민 일반 정서와 괴리된 상황 인식과 이 순간을 모면하자는 의도가 읽힌다.

박 대통령은 국가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하다고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남다른 인생 역정을 돌아볼 때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도자의 능력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말을 아껴서 상대에게 경외심을 일으키는 '카리스마'가 잘 작동하고 의전에 능하고 우아하고 품격 있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잘 관리하는 것이 나쁘진 않다. 하지만, 그 이상의 알맹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한계치를 드러내고 있어서 국민은 답답하고 불안하다. 취임 후 처음으로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 사실은 국민의 실망감을 그대로 반영한다. 소통을 강화하고 비밀스럽고 미숙한 국정 운영 방식을 개선하라는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바뀔 기미가 없으니 그 '원칙'이라는 것이 '외고집'으로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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