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로봇은 창조하지 않는다

입력 2014-12-17 07:36:27

도시는 생명을 가진 유기체다. 로봇이 아니다. 로봇은 인간이 조작할 수 있다. 로봇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을 때 부품을 갈아 끼우고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장착하여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도시는 로봇처럼 조작할 수 없다. 도시는 자기진화를 거듭하는 복잡계다. 복잡계는 내부의 작동 원리가 문자 그대로 복잡해 사전에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복잡계는 유기체적 성격을 띠며 무릇 살아있는 모든 유기체가 그렇듯 신진대사를 한다.

도시도 신진대사를 한다. 신진대사는 소화하고 배설하는 능력이다. 신진대사의 효율성에 의해 도시는 발전할 수도 있고, 혹은 소멸의 운명을 맞기도 한다. 신진대사가 활발한 도시는 생존과 성장을 위하여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에너지 생산을 내부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도시도 필요한 에너지를 내부에서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고 외부의 자원에만 의존하게 되면 퇴락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마약이나 링거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그에게 소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대구는 신진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도시인가? 그동안 대구는 하나의 독립된 복잡계적 유기체라기보다는 물화(物化)된 로봇으로 자신을 규정하여 왔다. 내부의 역량에 의해 주체화되기보다는 끊임없이 객체화하고 대상화되어, 외부의 명령을 마치 신탁처럼 받아들이는 로봇이 대구의 정체로 어느덧 고착되어 버렸다. 공무원과 전문가, 그리고 정치인들은 로봇을 작동시키는 필수적인 소프트웨어를 짜는 데 프로그래머의 일원으로 동원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대구 발전 전략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발표된다. 그러나 로봇은 한 번도 프로그래머가 원하는 방식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것은 프로그래머의 무능과 소프트웨어의 에러 때문이 아니었다. 애당초 로봇은 존재하지 않았던 허구였던 것이다. 풍차를 적으로 알고 무모하게 덤벼든 돈키호테의 대구판 자기기만이 실패의 자명한 원인이다.

대구를 창조경제의 메카로 만들자는 구호가 등장하고 있다. 창조경제는 대구가 자기진화하는 복잡계적 정체성을 복원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창조는 도시 내부의 활발한 신진대사를 전제조건으로 한다. 대구를 창조경제의 메카로 만드는 것은 로봇을 작동시키기 위해 일류의 프로그래머를 동원하여 정교한 소프트웨어를 짜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로봇은 창조하지 않는다. 창조는 파괴를 전제로 하고, 혁신과 융합을 위한 창발적 에너지가 충만한 곳에서 이루어진다. 창조경제 메카로서 대구의 발전 전략은 도시 내부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이를 통해 생성된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창조경제는 창조적 도시 생태계의 활발한 신진대사를 배경으로 구현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창조경제 전문가인 플로리다 교수의 '창조도시는 크고, 빠르고, 녹색의 신진대사를 조건으로 한다'는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도시가 커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 크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적자원의 크기다. 인적자원은 외부성을 가지기 때문에 창조계급을 도시 내부로 많이 유인하는 것은 필연적 정책요소다. 이에 따르면 중앙정부 예산을 따내기 위해 퍼붓는 노력과 시간의 일부를 고급 인력 한 사람이라도 떠나지 않도록 붙잡거나 외부에서 불러올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도시 정책이 된다.

도시의 빠르기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 상호 간 지식과 아이디어 네트워크의 활성화와 긴밀함의 정도다. 창조적 발상은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인 만남을 통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도시 외곽에 거대한 규모의 공단을 조성하는 것보다 도심 내부에서 창조적 계급 상호 간 소통과 만남을 촉진하는 노력이 오히려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로 이해될 수 있다.

녹색의 신진대사는 탈산업화의 시대정신을 도시 전체가 수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산업화 시대는 이미 과거가 되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개발연대의 국가주의 성장 전략을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상황이 여전히 지배적인 대구에서 이러한 전환이 당장은 생뚱맞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그만큼 절실한 변화에 대한 요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김영철(계명대 교수 경제금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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