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가 주요 생산 무대…월 20만~100만원
'찌라시'(증권가 루머를 모은 사설 정보지) 정국이다. 정윤회 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에 대한 수사는 명예훼손과 유출 경로로 좁혀지고 있지만, 실상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은 내용의 진위다. 파문이 가라앉지 않는 이유다. 이달 7일 박근혜 대통령이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에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찌라시'라는 단어를 쓴 것에 대한 언격(言格) 문제를 떠나, 찌라시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찌라시, 뉴스냐 풍문이냐
'뿌리다'를 의미하는 일본어 '지라시'(散らし)를 강하게 발음한 데서 유래한 비속어가 '찌라시'다. 국어사전에는 없다. 전문가들은 '광고로 뿌리는 종이'나 '전단' 정도로 순화해 표현하길 권고한다. 그러나 정윤회 문건 파동을 거치면서 찌라시가 통용어로 자리매김하는 분위기다.
찌라시는 사실과 거짓의 중간에 있다. 찌라시가 뉴스가 될 때도 있고, 풍문으로만 떠돌다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찌라시가 처음 만들어진 건 1970년대다. 수출진흥시대 종합상사 직원이 실적을 교환하면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엔 언론 통제 탓에 은밀하게 떠돌았다. 비자금 수사로 떠들썩했던 1990년대에는 그 수요가 폭증했다. 정보전에 뒤지지 않으려는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업 정보팀까지 생겨난 것이 그때다.
찌라시 유포가 일상화한 것은 2000년대 주식시장 규모가 커지면서부터다. 실시간 주식시황 탐색에 나선 개인투자자가 투자 정보를 교환하고자 정보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고, 정치'경제'행정'연예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정보가 수합됐다. 그 속에 비화나 뜬소문이 섞였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일반인도 쉽게 찌라시를 얻을 수 있었다. 연예계 찌라시는 2005년 '연예인 X파일'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사회문제가 된 바 있다. 연예인 99명의 사생활이 담긴 문건은 실로 삽시간에 퍼졌다.
정부가 유포자 색출에 나섰다. 허위정보의 생산'유통을 막겠다고 하면서 찌라시 업계는 위축됐다. 그러나 명맥이 끊어진 것은 아니다. 2010년대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찌라시 확산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가십성 정보가 '카톡 쪽지'로 급격히 유포된다. 일반인도 더는 예외가 아니다. 사내 불륜, 이혼 등 자극적인 내용이 사진, 개인정보와 함께 빠른 속도로 확산하면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고 최진실 씨는 악성 루머와 허위 정보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여의도가 진원지, 가격은 천차만별
찌라시를 열어보면 먼저 등장하는 것이 '정치계'다. 여의도가 찌라시 생산의 주무대다. 정치권, 증권가, 언론에서 떠도는 이야기가 모인다.
대기업 정보팀, 국회 보좌진, 정보기관의 관계자나 전'현직 언론인 등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는 보통 20~30쪽 분량으로 만들어져 유통된다. 대부분 뒷얘기다. 매일 나오는 찌라시도 있고, 주당 1, 2회 나오는 것도 있다. 'OOO뉴스', 'OOO리포트', '주간OO' 등의 형태로 시중에 돈다. 경찰은 최소 10여 개의 팀이 찌라시 제작과 유통에 나서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격은 월 20만~100만원까지 다양하다.
정보분석가라고 자칭한 한 찌라시 제작자는 "찌라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도 다른 정보와 합쳐져 새로운 정보가 만들어질 수 있다. 사건의 배경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을 내다보는데도 도움이 된다. 많은 기업이 찌라시를 사는 이유다"라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문건 유출 혐의를 받는 서울경찰청 정보1분실 소속 한모 경위를 통해 한화그룹 경영기획실에 건네진 것을 확인했다. 기업이 찌라시를 사 모으고 있다는 방증이다.
◆찌라시 앞에 비밀이 없다?
지난달 검찰은 골프장 경기진행요원(캐디)을 성추행한 혐의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박 전 국회의장의 성추행 논란도 9월 찌라시를 통해 급속히 전파되면서 사건이 커졌다. 사건 당일 상황과 피해자 인적 정보가 살을 붙이며 찌라시 형태로 생산'전파됐고, 박 전 국회의장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정국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당시는 국회의원 신분-도 찌라시 때문에 속을 앓았다. 박근혜 대통령 부산 지원유세 때 대화록 관련 내용을 언급한 것이 발단이 됐다. "찌라시 내용을 토대로 유세 때 얘기했다"고 해명했지만 "찌라시 정도의 이야기를 유세에 활용할 수 있느냐"는 비판여론도 적잖았다.
정윤회 문건 파동이 찌라시의 격(格)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직 불확실하다. 비선 실세 의혹의 진위가 밝혀져 찌라시가 고급 정보지로 격상될지 출처 불명의 뜬소문으로 격하할지 주목된다.
이지현 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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