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승패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야구팬들의 의견은 여러 가지로 갈린다. 감독의 능력이 팀 성적의 중핵이라고 보는 '감독론'이 하나요, 감독이 팀을 살릴 수는 없으되, 죽일 수는 있다고 보는 '유보론'이 둘이요, 감독이라는 존재는 허상일 뿐 선수들의 능력만이 팀 성적의 절대적 요인을 제공한다고 보는 '감독무용론'이 그 마지막이다.
야구 통계 전문가들은 대체로 '감독무용론'의 손을 들어주는 편인 것 같다. 이들은 다양한 통계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감독이 자신의 능력으로 연간 팀에 추가할 수 있는 승수는 많아 봐야 2, 3승에 불과하다는 잔인한 결론을 내렸다. 감독님들이야 발끈하시겠지만, 경험론적으로도 우리는 이 이야기가 그럴듯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축구나 농구와는 달리 야구에서는 소위 '명장'이라는 분들의 커리어가 도대체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를 10번 제패한 명장 김응룡은 최근 한화를 맡아 2년 연속 최하위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나이 탓이라고? 그럼 이건 어떤가? 4회 우승한 김재박은 LG로 부임해 3년간 5, 8, 7위를 기록하며 망가졌다. 투수 조련사로 이름을 떨쳤던 선동열과 김시진은 각각 기아와 롯데로 부임해 투수진의 붕괴와 함께 팀을 떠났다. 이런 사례는 사실 무수히 많아서 감독 노릇 이거 선수 복불복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구미호나 도깨비는 사라져만 간다. 마찬가지로 야구가 진행될수록, '리더십'이나 '신출귀몰한 응변'은 적어도 표본이 수렴되는 장기에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허상임을 깨닫게 된다. 통계와 확률을 기반으로 선수들을 영입해서 정석에 따라 무난하게 운용을 하면, 성적이 오차 범위 안에서 깨끗하게 출력되는 시스템. 이런 시대의 야구에 명장은 있을 수도 없고, 필요치도 않아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연히 낙담을 하게 된다. 야구판 돌아가는 모양새가 사람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과 비슷해 보여 더 그런가도 싶다.
얼마 전 김성근이 한화 구단 감독에 부임했다. 종심의 나이인 그가 패가 거의 결정되어 있는 이 노름판에, 지난 9년간 박살이 난 밑천을 물려받아 앉은 것이다. 요 며칠 선수 보강을 했다고는 해도 셈으로는 분명 지게 되어 있는 팀인데, 이 영감, 또 무슨 도깨비 수작을 부려 불측의 승리를 쓸어 담으려는 건지 모르겠다. 천 년 묵은 여우 한 마리 남지 않은 세상이 너무 삭막해서일까. 그가 다시 한 번, 첨단의 빅데이터마저 비웃으며, 명장의 도깨비 방망이를 껄껄껄 휘두르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박지형 문화평론가
댓글 많은 뉴스
박수현 "카톡 검열이 국민 겁박? 음주단속은 일상생활 검열인가"
'카톡 검열' 논란 일파만파…학자들도 일제히 질타
이재명 "가짜뉴스 유포하다 문제 제기하니 반격…민주주의의 적"
"나훈아 78세, 비열한 노인"…문화평론가 김갑수, 작심 비판
판사 출신 주호영 국회부의장 "원칙은 무조건 불구속 수사…강제 수사 당장 접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