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과 '찌라시'

입력 2014-12-11 07:04:35

문건 유출로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하지만 매일신문 서울 정치부 기자로 지난 2000년부터 2년여 동안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밀착 전담했던 저의 입장에서는, 이 문건이 '찌라시에 기재된 사실무근'이거나 '확대 포장'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당시 취재 활동을 통해 정호성 안봉근, 故 이춘상 등 보좌진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박 대통령과도 비교적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박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성품, 보좌진들의 품성과 업무 스타일, 관계 등을 고려해 판단할 때 그렇다는 얘기다.

문건에 나오는 핵심 내용은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청와대 비서관 등이 지난해 10월부터 매달 2차례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 씨를 만나 국정 상황을 보고 하고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건의 사실 여부 판단 기준은,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비선 조직을 몰래 만들어 운영하는 것은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 결코 아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정치 입문 17년 동안 박 대통령의 코드에 철저히 맞춰진, 눈빛만 봐도 대통령의 마음을 꿰뚫는 보좌진들이 정윤회 씨를 만나 국정을 일일이 의논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업무 영역이 분명한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관 등이 오래전의 직장 상사인 정윤회 씨를 만나 국정을 일일이 보고하고 지시를 받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국회의원 등 정치에 뜻이 없는 이들은, 퇴임 후 박 대통령과 평생을 함께할 준비를 지금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박 대통령을 담당했던 16대 국회 당시 의원회관 3층의 박근혜 의원실에는 정윤회 비서실장과 故 이춘상 보좌관, 정호성'안봉근 비서관, 그리고 여비서 등 5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매일신문이 박근혜 의원의 지역구인 달성군이 있는 대구의 최고 신문사여서, 더 잦은 접촉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의원을 취재한다는 호기심으로 의원실을 첫 방문했을 때 많이 놀랐다는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30대 중후반의 보좌진 모두가 학구적인데다 담백하고 솔직한 품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심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을 어떻게 헤쳐나갈까'라는 걱정까지 들 정도였다.

당시 상당수의 국회의원이 보좌진들에 대해 불합리하고 비인격적인 대우를 일삼아 심한 경우 보좌진이 1년에 8명까지 바뀌는 의원실을 본 적이 있다. 반면 박근혜 의원실에서는, 1998년 박 대통령 정치 입문 후 17년 동안 한 사람도 교체되지 않는 진기록을 보이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인격적인 대우와 신뢰로 보좌진들은 박 대통령의 코드에 맞춰 성실히 일해 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40대 중반의 정윤회 씨는, 당시 국회의원 보좌진에는 비서실장이란 직책이 없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비서실장으로 호칭됐다. 정윤회 씨는 박 대통령과 정치 입문 전부터 알던 사이여서 그런지 비교적 격이 없어 보였고, 다른 보좌진들이 '실장님'으로 불렀다.

박 대통령과 보좌진 관계의 특징은 가족적인 유대감으로 뭉쳐져 있다는 점으로 보였다. 2002년 박근혜 의원 삼성동 자택 출입기자단 오픈하우스 행사 때, 약속 시간보다 좀 일찍 도착한 나는, 보좌진 부인들이 모여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내심 놀랐다. 너무 자연스럽고 편안한 가족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1층 응접실 뒤편으로 연결된 주방에서 정호성 비서관 부인 등 몇몇 가족들이 화기애애하게 파전을 굽고 잡채를 만드는 것이, 마치 가족행사 같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특수관계 탓에 박 대통령에게서 이들 보좌진들이 사라진다면 국정의 누수 현상이 오지 않을까 우려가 들기도 한다. 또 도덕적 흠결이 없는 박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일부 정치권들이 보좌진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마구 흔드는 정치적 공세로 보이기도 한다.

박진홍 전 매일신문 서울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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