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되면 얌체 주·정차로 몸살,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통행전쟁
불법 주'정차는 대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도로가 좁고 단속이 느슨한 경북 지역 중소도시와 읍'면 소재지들도 심각한 주차난에 시달린다. 전통시장이 서는 장날이면 도심 도로 전체가 몸살을 앓고, 대형 화물차들의 불법 주차로 사고 위험도 높다. 늘어나는 차량 대수에 비해 공영주차장 등 주차 공간 확보에는 소극적이어서 차량 흐름은 오히려 뒷걸음질치는 형편이다.
◆좁은 도로, 넘치는 차량
지난달 28일 오전 구미시 송정동 원룸이 밀집해 있는 주택가 골목. 출근을 서두르던 한 남성이 짜증 섞인 말투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차를 이렇게 주차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빨리 차 좀 빼주세요!"
구미시 형곡동과 원평동, 사곡동 등 원룸이 밀집한 주택가에서는 매일 주차 전쟁이 벌어진다. 골목길에는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고, 일부는 이중 주차를 일삼는다. 도로가 좁은데다 원룸 등 다가구주택의 주차 면수는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건축법상 전용면적 60㎡ 이하의 주택은 가구당 0.7대의 주차면적만 확보하면 된다. 이 때문에 자리를 찾지 못한 차량들은 밤마다 주택가 담벼락을 점령한다.
같은 날 오후 예천군청 뒤편 흑응로. 편도 1차로 도로지만 동네 주민들과 군청 공무원, 민원인 등이 세우고 간 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차량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공간밖에 없다. 주민 김모 씨는 "매일 오전 출근 시간만 되면 군청 공무원과 민원인들이 집앞 도로 양편에 주차를 일삼는 탓에 도로가 마비된다"며 "꽉 막힌 도로를 먼저 빠져나가기 위한 차량 경적 소리로 아침잠을 설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예천군에 따르면 11월 현재 예천군에 등록된 차량 대수는 2만여 대다. 인구 4만6천여 명을 감안하면 1인당 0.43대꼴로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반해 전체 주차장 확보 면수는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5천989면에 그치고 있다.
예천군은 군청 인근의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해 가까운 한천둔치에 무료주차장을 마련하고 중앙시장 인근에 유료주차장 103면을 갖췄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예천군 관계자는 "예천읍내 도시계획 구조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 도로가 좁고 주차공간이 부족하다"면서 "군청 이전 후 군청 터를 주차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했다.
◆장날이면 꽉 막히는 읍'면 소재지
전통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시장 주변 도로는 불법 주'정차로 몸살을 앓는다. 안동시 제일생명네거리~사장둑 구간은 인근 중앙신시장을 찾는 사람들로 차량 통행량이 많다. 중앙신시장은 상설시장이지만 매주 2, 7일은 인근 지역 상인도 모여들기 때문에 도로 전체가 마비 상태에 빠진다. 마치 양몰이를 하듯 단속요원들을 피해 불법 주'정차 차량이 사라졌다 모여들길 반복한다. 불법 주'정차 차량이 편도 3차로 중 두 개 차로를 차지하면서 통행을 위해 중앙선을 넘나드는 차량들이 적지 않다. 주민 권모(52) 씨는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물건을 사려고 전통시장에 오는데 주차 요금까지 내긴 아깝다"고 말했다.
안동시 관계자는 "단속을 해도 돌아서면 또다시 차를 세우는 형편"이라며 "시장 앞에 공영주차장이 있는데도 대부분 도롯가에 차를 주차한다"고 말했다.
성주와 고령도 사정은 비슷하다. 성주시장은 2, 7일, 고령시장은 4, 9일에 각각 장이 열린다. 두 시장 모두 읍내에 있어 장이 열리는 날이면 인근 도로는 불법 주'정차로 차량 통행이 어려울 정도다. 불법 주'정차로 인한 차량 접촉사고와 운전자들 간 실랑이도 자주 벌어지는 상황. 성주시장 인근 시외버스정류장의 진입 도로도 좁아 버스가 들어오면 도로가 마비된다. 성주군과 고령군은 시장 인근에 있던 경찰서를 각각 이전하고 주차장을 만들었지만 이마저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하지만 단속의 손길은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도로변에 설치한 CC(폐쇄회로)TV 단속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주군의 불법 주차단속 건수는 2012년 616건, 2013년 428건, 올 11월 말 현재 231건으로 오히려 줄었다.
◆도로 위의 '지뢰', 대형차 불법주차
철강산업 도시의 특성상 대형화물차의 통행이 잦은 포항에서는 불법 주'정차된 화물차로 인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오전 1시 40분쯤 포항시 남구 철강로 포스코엠텍 앞 도로에서 J(39) 씨가 몰던 승용차가 불법 주차돼 있던 대형 화물차를 들이받아 J씨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어두운 밤에 주차 차량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앞서 지난 1월 18일 오전 4시 30분쯤에는 포항시 남구 대송면 건천'포항간 산업로에서 L(57) 씨가 승용차로 불법 주차돼 있던 트레일러를 들이받고 그 자리에서 숨지기도 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에서는 트레일러 등 화물차의 경우 취득 시 등록한 지정주차장이나 화물차량 전문 주차장에만 주차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아무리 주차선이 그어져 있는 공영장소라도 지자체의 허가를 받지 않은 화물차의 주차는 모두 불법이다. 이는 덩치가 큰 화물차가 시야 방해 등 다른 운전자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큰 탓이다. 그 때문에 화물차의 불법 주'정차는 과태료 20만원 및 10일 이하 운행정지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경찰과 지자체 등에서는 화물차 불법 주'정차에 대해 수시로 합동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근절은 쉽지 않다. 단속이 있으면 잠깐 자리를 피해 단속이 끝난 후 다시 찾거나 서로 단속 정보를 공유하는 얌체 운전자가 많기 때문이다.
산업도시인 구미시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 때문에 구미시는 원활한 화물 운송과 화물차의 주차질서 확립을 위해 화물공영차고지 조성에 나섰다. 구미시는 지난달 20일 화물공영차고지 조성을 위해 타당성 조사 용역을 진행 중이다.
구미시 교통행정과 이재익 교통안전계장은 "역후광장 인근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되고 유료주차장도 마련돼 있지만 얌체 운전자들의 불법주차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다"면서 "불법 주'정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설이나 단속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민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포항남부경찰서 교통관리계 김재현 계장은 "과태료를 받아도 그냥 '오늘 재수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불법 주'정차는 직접적인 교통사고 유발 외에도 소통 혼잡, 보행자에 대한 시야 확보 방해 등 안전운행에 큰 불편을 주는 행위인 점을 운전자 스스로가 자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미 정창구 기자 jungcg@msnet.co.kr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성주 고령 전병용 기자 yong126@msnet.co.kr 포항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예천 권오석 기자 stone5@msnet.co.kr 안동 전종훈 기자 cjh4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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