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차 오일쇼크는 소련에 뜻하지 않은 횡재를 안겼다. 당시 소련은 비효율적인 경제체제에다 군사력 증강에 가용자원을 과잉 투입한 결과 재정난이 극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유가의 급등은 소련 국내에서 부족한 물품을 수입하는 데 필요한 서방의 경화(Hard Currency) 확보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독(毒)이었다. 원유판매 수입 급증으로 재정에 숨통이 트이자 소련 집권층은 경제체제를 개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군사비 지출은 더욱 늘렸다. 그 결과 1970년대 말 소련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6분의 1밖에 안됐지만, 국방 예산은 미국의 3배에 달했다. 이런 상태로는 국가가 정상적으로 굴러갈 수가 없다. 소련은 1991년에 망했지만 망조(亡兆)는 그때부터 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앞당긴 이가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다. 그의 전략은 1981년 11월 서명한 'NSDD(국가안보결정지침) 66호'라는 문서에 잘 나와있다. 핵심은 '소련이 생존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를 공격함으로써 소련경제를 파탄시킨다'는 것이었다. 그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당시 소련 경제의 생명줄인 석유로-당시 소련 수출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3분 2에 달했다-유가를 내려 소련에 타격을 준다는 것이 레이건의 전략이었다.
이후의 사태는 미국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NSDD 66호가 발효된 이후 4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고 미국과 공조해 원유생산량을 4배로 늘렸고 국제유가는 폭락했다. 그 결과 소련이 입은 손실은 무려 연간 200억 달러에 달했다. 이렇게 시작된 저유가 시대는 1988년까지 이어졌다. NSDD 66호에 따라 소련에 대한 금융지원이 중단된 상태에서 이러한 저유가 공세는 소련의 목을 조이기에 충분했다.
국제유가의 하락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떨어지는 유가 뒤에는 정치적 음모가 있다"며 '음모설'을 제기했다. 푸틴은 음모의 주도세력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미국'을 지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의 유가 하락의 근본적 원인은 미국의 '셰일혁명'이란 게 정확한 분석이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신냉전'에 들어간 러시아로서는 소련의 몰락을 가져온 '미국의 저유가 음모'를 떠올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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