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24시-현장기록 119] 현장…그리고 붕어빵

입력 2014-12-04 08:00:00

낙엽은 따로 정한 데 없이 바람을 타고 보도(步道)와 차로를 넘나들다 작정한 듯 내 앞에 멈춘다. 스산한 느낌과 반가운 마음이 교차한다. 입동이 엊그제 지나갔나 싶었는데, 벌써 동장군은 내 앞에 온 듯 아침저녁으로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매섭다.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퇴근하는데, 길가의 포장마차에 달콤한 냄새의 붕어빵이 유혹하듯 누워 있다. 먹음직스러운 붕어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얼마 전에 있었던 화재출동이 생생하게 기억의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그날은 야간 근무를 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체력증진을 위해 러닝머신에 올라 한바탕 달린 후 샤워장에서 온몸에 비누칠을 하던 중 화재출동 벨이 울렸다. 거품을 덮어쓴 몸을 물로 헹굴 여유가 없여 수건으로 대충 털어내고 내의만 후다닥 입고 바로 위에 방화복만 걸쳤다. 중간 활동복은 생략하고 겉옷만 입은 셈이다. 이렇듯 우리 현장 활동대원은 세면장이나 화장실에 있다가도 출동 지령이 떨어지면 하던 일을 중단한다. 가장 빠르게 구급이나 화재현장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반사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본능이다. 예전에는 출동 지령을 받은 후 차고 탈출 시간을 삼십 초 내에 완료하는 것을 과제로 삼은 적도 있다. 출동 중 무전 내용은 지하 통닭집 화재를 참고하고 대비하라는 상황이다.

현장에 도착하니 번잡한 상가지역 모퉁이 입구부터 검은 연기가 뭉클뭉클 나오고 있다. 지하층 입구에는 겁에 질린 통닭집 주인아주머니가 튀김 솥에 불이 붙었다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식용유 취급 부주의 화재로 짐작하고 빠르게 호스를 전개해서 지하계단으로 들어섰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암흑 같은 검은 연기는 나를 뒷걸음질치게 했다. 순간적인 두려움이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지하 화재, 특히 야간에 진입할 때는 야간 조명 장비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화재현장 활동대원은 불길의 기세를 먼저 누르려고 공격적인 진압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또한, 그때마다 위험상황을 인지하는 느낌과 감각기관의 육감으로 자기 신체 보호를 위한 방어도 반드시 병행한다.

암흑 속에서 화재진압을 해야 할 경우는 지상 화재 때보다 더욱 긴장감이 감돈다. 거기에다가 가스 새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니 두려움마저 엄습했다. 입구에서 사방을 살피니 주방 쪽에서 큰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약 5분 만에 큰불은 잡고, 잔불을 정리하는 현장 바닥은 기름으로 온통 뒤범벅이다. 튀김 솥에 불이 붙자 주인아주머니가 엉겁결에 물을 끼얹어 화재가 더 커진 것이다. 식용유로 인한 화재는 절대 물로는 끌 수 없다. 소화기를 이용할 때도 요령이 있다. 물은 화재가 확대되고, 소화기는 분사되는 압력으로 화염을 더 확산시킬 수 있다. 이럴 때는 화점을 향해 소화기 호스를 잡고 비로 쓸 듯이 해야 한다. 다른 방법도 있다. 젖은 수건 또는 이불 같은 두꺼운 천도 좋다. 화염 위를 덮을 수 있는 양의 채소 따위로 불길을 잡는 질식소화이다.

주인의 성급하고 순간적인 실수로 큰 재산 피해를 당하게 된 것을 생각하니 씁쓸하고 안타깝다. 그나마 빠른 신고, 빠른 진화로 인명피해가 없고 영업장 전체로 화재가 번지지 않았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런데 가스 밸브 잠금도 확인하였으나 어디선가 가스 새는 소리가 계속 들린다. 다시 현장을 살펴보니 생맥주 용기에 채워진 탄산가스가 새어나오는 소리였다. 뜨거운 화염에 호스가 녹아서 탄산이 새어나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 가스용기에 담긴 탄산가스가 터졌다면 그 또한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현장을 뒤로하고 철수 준비를 할 때 화재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20대로 보이는 한 청년이 손에 든 붕어빵 한 봉지를 건네준다. 화재진화를 하다 보니 옷과 신발, 얼굴 전체가 검게 얼룩지고 기름으로 범벅되어 있는 모습이 힘겹고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힘내라는 의미로 주는 것 같다. 처음에는 마음만이라도 충분하다고 사양을 하였으나 재차 건네주기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붕어빵을 받아서 센터로 귀소했다.

장비 정돈을 해서 언제든지 다시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동료와 둘러앉아 붕어빵을 하나씩 나눠 먹었다. 힘을 많이 쏟은 뒤라 출출한 차에 요긴한 간식이 되었다. 달콤하고 맛있는 그 여섯 마리의 붕어빵 속엔 팥만 들어 있던 게 아니었다. 훈훈한 정과 함께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까지 녹아들어 있었기에 여태껏 먹어본 붕어빵 중에서도 가장 맛있었다.

다양한 화재 현장을 땀으로 누빌 때면 힘들고 고달플 때도 많다. 뜨거운 화염 속에 오랜 시간 버텨야 할 때엔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상황으로 심한 갈증을 참고 견뎌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오늘도 현장에서 나를 비롯한 우리 동료 소방관들은 시민들의 아름답고 고마운 마음에서 얻은 힘으로 또 무한한 에너지를 축적한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도 신속한 출동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채 대기를 하고 있다. 바람이 매서운 겨울이 왔지만, 대구 시민 모두가 불조심을 생활화해서 '안전한 겨울나기'로 행복한 겨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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