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을 찾는 사람들
함박눈이 오롯이 쌓인 시골 풍경은 도회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상향처럼 가슴에 아련하다.
꽁보리밥 반 그릇을 쿰쿰한 냄새가 짙은 청국장국에 시래기나물을 버무려 게 눈 감추듯 뚝딱 비우고선 연신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리다 낡아빠진 심청전 몇 장을 보는 둥 마는 둥 눈을 비비다 까무룩 잠이 든 머리맡으로 어머니는 연신 바느질이다.
시침질, 마름질, 감침질, 휘갑치기 등 한 발이나 늘어진 실에 바늘귀에서 두어 번 없어진 끝에 양말 한 켤레가 몰아치듯 쫓는 잠에 빙그레 웃고 있다. 재차 실타래를 집어 실을 풀지만 침침한 눈에 이번에는 바늘귀가 보이질 않는다. 메마른 손을 입에 문질러 실 끝을 부여잡아 문지르고 가물거리는 호롱불의 심지를 돋워 보지만 역부족, 연신 바늘귀와 실이 따로 놀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바늘허리에 실을 매고 싶다. 뒤란 감나무가지 끝에 앉은 부엉이조차 안타까운지 한층 무거워진 눈꺼풀을 치켜뜨곤 발을 고른다. 초저녁 사각사각 내린 눈이 우수수 떨어지고 마당 한쪽 구석에선 초저녁 단잠을 깬 삽살개가 "끙~" 하고 돌아눕는다. 밤마을 나간 아버지가 막걸리 몇 잔에 더운 입김을 몰아쉬며 사립문을 밀쳐 돌아오시는가 보다. "진즉에 오질 않고…!" 어머니의 푸념이 꿈길을 달리는 아들의 귓전에 아련하다.
"얼른 일어나 핵교 가거라!" 새벽녘 모진 바람에 아궁이에 불을 지핀 지도 꽤나 지났는지 서늘해진 아랫목에 점차 열기가 오르고 줄곧 눈물만 그렁그렁하던 무쇠 솥에 더운 김이 오를 무렵이다.
밤새 주린 배에 외양간에 든 어미 소가 송아지에게 젖을 물리며 내뿜는 입김이 아침을 짓느라 부산한 어머니의 등 뒤에서 하얗게 흩어진다. 꺾어지기만 하는 고개를 들어 선잠을 쫓으려 '벌컥'문을 열지만 문고리에 찰싹 달라붙은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가슴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뼛골에서 온몸으로 퍼지는 듯 부르르 사지가 떨려온다. "오지게 춥다. 옷 단디 입고 가라!" 어제까지만 해도 찬바람이 성성이던 무릎이 말끔히 기워지고 화톳불 불티가 날아 앉은 양말은 씻은 입처럼 깨끗하다. 다른 친구라고 별반 다를 바 없어 양말이면 양말, 무릎이면 무릎마다 형형색색으로 등굣길에 나풀거린다.
문득 점심을 먹고 나선 길에 만난 노점상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썩 괜찮아 보이는 청바지 한 장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이거는 우리 아이 조야겠네!" 하며 엉덩이 뒤로 숨기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주인이 지꺼 골라가는 게 어딨어요!" 하고 손을 내밀지만 "어디예~!" 하고는 쓴웃음이다.
이어 아주머니는 이 노점은 이웃주민들로부터 기증받은 옷을 한 벌당 만원에 팔아 그 수익금을 형편이 어려운 이웃의 연탄을 사는 자금으로 써야 하기에 주인도 별수 없다면서 이 옷은 이웃의 아무개집에서 비싸게 사서 지난여름 딱 한 번 입은 옷이라 진즉에 마음에 둔 것이라고 사족처럼 덧붙인다. 알고 보니 아주머니는 주인이 아니라 자원봉사자, 미상불 그냥 주인 행세로 슬쩍해도 될 법도 한데 본인도 만원을 내고 산단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어린 날의 엄동설한이 그리 춥지 않았던 까닭은 부모님의 자식을 위한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비싸다고 다 좋다고 할 수도, 싸다고 다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사랑이다. 사랑의 훈기만 있으면 세상은 더불어 살 수 있으며 아름답게 변해 갈 것이다. 아주머니의 사랑의 연탄을 사기 위한 자원봉사, "아저씨도 옷 있으면 기증해요!" 하고 무심코 던지는 말에 불식간 마누라의 얼굴이 떠오르고 머릿속은 장롱 속을 더듬는다. 현재 연탄 한 장이 오백원, 어느 날인가 사랑의 연탄배달을 하시는 분이 "연탄만 있으면 배달은 얼마든지 책임집니다" 하고 사랑의 손길을 호소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본 적이 있다.
가을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겨울을 재촉하는 듯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지만 사회 곳곳에서 이렇게 훈훈한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렇게 춥지만은 않은 겨울이 될 것 같다.
이원선(대구 수성구 수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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