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활의 풍류산하] 모차르트를 먹다

입력 2014-12-04 08:00:00

어제 밤에는 멋진 식사 자리에 초대되는 행운을 누렸다. 꿈같기도 한 환상적인 모임이었다. 평소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풍경을 나름대로 상상해 보곤 그게 바로 '그림의 떡'이라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꿈꿔온 우아한 식탁은 첫째 양탄자 위로 흐르는 피아노 음악이 발목을 덮어야 하고 조명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은은해야 한다. 와인을 천천히 마시고 있을 때 메인 디시에는 진미 요리가 한두 가지쯤 나왔으면. 그 요리는 샥스핀, 새끼오리 가슴살 아니면 색깔 고운 훈제 연어요리에 양젖 치즈가 곁들여졌으면 좋겠다. 그다음엔 분위기에 걸맞은 젖은 눈빛의 여인이 맞은편에 앉았으면….

진미요리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내가 유럽에서 태어나 큰 코 그늘 아래서 최고급 식탁을 디자인했다면 세계 3대 진미 중의 하나는 포함시켰을 것이다. 그 진미는 송로버섯(Truffle), 거위 간(Foie gras), 철갑상어 알(Cavier)이다. 나는 아직 이 진미들을 만나본 적이 없다. 미안하지만 겨우 만난 것들이 짝퉁들, 새 송이버섯, 닭 간, 도루묵 알 정도가 고작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엊저녁에 내 생애 중에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았던 희귀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송로버섯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먹어 보았다. 까놓고 이야기하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기적이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나 상황이 찰나에 가능 쪽으로 기우는 것을 이른다. 사람이 기적을 만나면 정신을 잃든지 엉덩이를 자리에 붙이지 못한다. 어젯밤 내가 그랬다.

농촌에서 태어나 빈핍과 어깨동무하고 자란 나는 어느 누가 "밥"이라고 말하면 보리밥에 김치와 된장찌개를 먼저 떠올린다. 외식을 할 경우 한정식 상 앞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돼지 국밥이나 육개장 한 그릇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그런 나에게 송로버섯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대여섯 명의 지인들이 모였다. 송로버섯은 달걀 10개 들이 꾸러미와 비슷하게 생긴 흰색 용기에 여러 겹으로 쌓여 있었다. 골프공보다 좀 더 큰 흰 송로였다. 가격은 한화 60여만원이 넘는다니 경외심과 존경심이 한꺼번에 일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친구가 제철음식이라며 선물한 것을 이날 파티의 메인 요리 재료로 갖고 온 것이다.

귀한 버섯이 주방장 손으로 건너가기 전 돌아가면서 냄새를 맡아 보았다. 검은 것보다 훨씬 고급인 흰 송로의 향은 강하면서 우아하고 성적 흥분 효과를 내는 페르몬 향 탓으로 사무치게 관능적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고관대작들 사이에 귀한 음식이자 최고로 치는 최음제였다. 또 중세 유럽에선 정조대를 차고 있던 군인들의 아내들이 미남 귀족들의 송로요리 초대에 끓는 피의 기운을 참지 못해 성문화가 문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밤꽃 냄새는 과부들이 사족을 못 쓸 정도라는 소문이 났지만 송로버섯은 은근한 그리움 같은 향내가 번진다고 한다. 나는 이날 밤 혀를 촉촉하게 적시는 화이트 와인의 풍미 때문에 송로의 향을 제대로 느낄 수는 없었다. 숫총각 첫날밤 치르듯 멋도 모르고 맛도 모른 채 냄새도 맡고 얇게 썬 살점을 먹긴 먹었다. 그러나 기억의 갈피 속에서 그 향내와 속살 맛을 도저히 그려낼 수는 없다.

이탈리아에선 송로버섯을 대중 교통수단으로 운송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프랑스의 어느 작가는 "송로버섯 맛을 보면 신을 사랑하게 된다"는 글을 쓴 적도 있다. 그 맛이 어떤 맛이길래 신을 사랑할 정도라면 옆에 앉아있는 여자나 남자를 사랑하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 아닐까. 송로버섯은 굽거나 볶거나 자체 조리는 하지 않는다. 파스타, 리소토, 달걀, 샐러드, 스테이크 등 기존요리 위에 얇게 썰어 고명처럼 접시나 음식 위에 얹어 낸다.

진미요리는 돈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정으로 먹는 음식이다. 돈 많은 부자들이 현찰을 주고 사 먹을 수는 있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의 경우 이탈리아 친구에게 송로버섯 한 개 가격의 몇 십 배의 은덕을 평소에 베풀었기에 그가 맘먹고 그곳 제철 음식을 선물로 가져 온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인간의 정은 항상 돈의 상위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19세기 이탈리아 음악의 거장 조아키노 로시니는 송로버섯을 '버섯의 모차르트'라고 추켜세웠다. 나는 어젯밤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모차르트를 먹으며 쇼팽의 피아노 음악을 들었다. 이제 나도 신을 사랑할 딱 좋을 나이가 되었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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