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서 유럽까지 열흘, 운송비도 바다길의 절반

입력 2014-12-03 08:00:00

유라시아 물류 중심 포항…동북아 징검다리 역할 충분

북한 나진항에서 러시아산 석탄을 싣고 1일 오전 포항 포스코 내 신항에 정박한 화물선에서 석탄 하역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북한 나진항에서 러시아산 석탄을 싣고 1일 오전 포항 포스코 내 신항에 정박한 화물선에서 석탄 하역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지난달 29일 포항신항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러시아에서 출발한 이 손님은 하루 전 북한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날 한국 포항에 도착했다. 그래도 갈 길은 멀었다. 다시 포항에서 며칠밤을 보낸 뒤 이번엔 포스코를 통해 다시 전 세계로 떠날 예정이다. 이 손님의 이름은 '유연탄'. 우리가 흔히 석탄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이다.

◆대북 협력의 물꼬를 트다

중국 선적의 3만2천911t급 화물선 신홍바오셔(XIN HONG BAO SHI)호는 러시아산 유연탄 4만500t을 싣고 지난달 29일 오전 6시쯤 포항 영일만해역에 도착했다. 이번 신홍바오셔호의 방한이 뜻깊은 것은 이 유연탄이 러시아에서 북한 나진항을 통해 들어왔다는 점이다.

사실 외국 선적의 화물선이 북한을 거쳐오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은 아니다. 대형 화물선은 한번 출항하면 보통 3개국 이상을 거쳐 화물을 실어나른다. 이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 등 대북교역이 가능한 나라의 경우 북한과 한국을 넘나들며 화물을 실어나르는 일이 종종 있다.

포항해양경비안전서 대외협력팀 권오근 경장은 "다른 나라의 화물선 일정은 특별히 우리나라에서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북한을 다녀왔는지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면서도 "얼마나 자주 오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매년 1, 2척 이상은 북한을 거쳐 오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홍바오셔호의 경우는 왜 특별한 것일까. 그것은 이번 유연탄 수입이 남'북'러시아가 참여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첫 결실이기 때문이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포스코와 현대상선, 코레일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러시아를 통해 북한과 3각 교류를 하는 사업이다. 지난 2008년 러시아 철도공사와 북한은 각각 7대 3의 비율로 출자해 '라손콘트라스'라는 기업을 설립했다.

러시아 하산과 북한 나진항을 이어 러시아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을, 북한은 안정적인 물류수입원을 얻는 것이 주요 목표이다. 북한은 라손콘트라스에 향후 50년간 나진항 사용권을 허가하는 등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기업 컨소시엄이 지난해 총 2천억원으로 러시아 측 지분 절반을 사들여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번 신홍바오셔호가 싣고 온 유연탄은 그 프로젝트의 시범사업이다. 러시아 하산에서 육상 철로로 54㎞를 운송한 후 북한 나진항에서 다시 해상을 통해 우리나라 포항의 포스코까지 옮기는 과정을 직접 운영해 향후 사업성을 타진해보는 시운전인 셈이다.

◆새로운 물류 창구 기대

우리나라는 지난 2010년 천안함 사태 이후 5'24 대북제재 조치를 발령하고 식량지원 등 북한과의 직접적인 교류를 모두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나진-하산 프로젝트'만은 예외조항으로 인정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북한과의 교류라기보다는 러시아에 대한 투자이며, 해당 사업에 북한이 참여하고 있는 것일 뿐 대북제재 조치사항은 아니라고 판단된다"면서 "투명성만 담보된다면 다양한 지원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제재 조치 이후 묶여 있던 대북 교류를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서서히 완화해 나갈 수도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경직됐던 대북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퍼주기식' 지원사업이 아니다. 새로운 물류항로 확보를 통해 경제 실리를 얻었다는 것에 더 의의가 크다.

이번 유연탄 운반에 들어간 운송비와 원자재 대금 등 사업비는 400만달러. 이는 다른 경로보다 10~15% 정도 절약된 금액이다. 유럽 수출도 운송 기간과 비용을 확 줄일 수 있다. 부산에서 독일까지 1만9천㎞를 항해하는데 27일이 소요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이용하면 절반의 운송비로 단 열흘 만에 물건을 실어나를 수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기업으로서도 운송비와 시간절약 등 상당히 매력적인 물류 창구"라며 "안정성만 확보된다면 추가 사업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북아 중심물류도시로의 과제

포항에 북한 선박이 들어온 것은 개항 후 44년이 지난 2006년 3월이 처음이었다. 당시 대북 비료지원 정책에 의해 북한 국적의 구룡호(5천43t)가 포항신항 7부두에 입항, 포항에서 생산된 복합비료 5천t을 선적해 갔다.

그러나 이는 정부차원의 교류였으며 당시 북한 선원 30명은 하선하지 않고 선내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했다. 이후 8년 동안 포항은 유리한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접점을 찾지 못했다. 만약 북측 해역을 통한 새로운 항로를 개발한다면 포항은 앞으로 북한'러시아'중국은 물론, 나아가 유라시아 물류 중점지로의 도약까지 기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 원자재 중심의 물류보다는 다양한 물류 자원을 확보하고 운송수단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경제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영남대 국제통상학부 고용기 교수는 "포항의 항만을 지금보다 키우려면 북측 항로 개발이 무척 매력적"이라며 "포항은 중국과 러시아, 몽골, 일본 등 동북아 일대를 잇는 징검다리로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철도와 항로 등 다양한 물류수단들의 연결을 확고하게 해 다양하고 풍부한 물자들이 포항에 모일 수 있도록 '브릿지'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포항 김대호 기자 dhkim@msnet.co.kr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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