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의 동양고전]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 이야기

입력 2014-11-29 07:43:21

명나라가 망하고 만주족 집권 시대, 나라 잃은 원인 반성한 정치비판서

'명이'는 '주역'의 괘(卦) 이름으로 밝은 것이 땅 속으로 들어가 꺼지는 것을 말한다. 지금 상황은 '명이'의 상황, 즉 명나라가 망하고 오랑캐인 만주족이 중원을 지배하는 상황이지만, 곧 밝은 세상(중화민족이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고 확신하고 그때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일종의 정치비판서이면서 옳은 정치의 방법을 제시하는 정치개론서인데, 명나라 멸망의 반성을 담고 있다. 명말의 유학자 황종희(黃宗羲'1610~1695)가 1662, 3년쯤 지은 책이다. 모두 13편.

황종희는 명나라 말기의 정치결사인 '동림당'(東林黨)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였고, 그 뒤 문학인의 정치결사인 '복사'(復社)와 '독서사'(讀書社)에 가담하여 정치활동을 하였다. 명나라가 멸망한 다음에는 청나라에 대한 정치 활동을 벌였다. 만년에는 고향에 은거하여 철학과 역사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명유학안'(明儒學案)은 명대 사상서로서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청나라의 조정으로부터 몇 번 초청을 받았으나 거절하고 명나라 유로(遺老)로 남았다. 이 책에서는 군주 전제를 비판하고 사대부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제를 주장하여 왕권체제 아래에서 독특한 정치론을 전개하였다. 청나라 말기의 혁명 운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주요 논설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원군'(原君)에서는 '군주란 무엇인가'를 논하였다.(原이란 '근본을 따져본다'는 뜻이다) "옛날 요순시대에는 왕위를 독점하지 않고 서로 양보하였는데, 후세 군주들은 천하를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여 자자손손 상속시키려 한다. 옛날에는 천하가 주인이고 군주는 그 종이었는데, 지금은 군주가 주인이고 천하를 종이라 한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원신'(原臣)에서는 우리가 벼슬길에 오르는 것은 군주를 위해서가 아니고 천하를 위해서라고 한다. "천하 만민을 위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면 군주가 명령해도 도리에 벗어난 일은 해서는 안 된다."

'원법'(原法)에서는 법에 대해 논하고 있다. "옛날 성왕은 백성에게 논밭을 주고, 뽕나무를 심게 하고, 학교를 세우고, 예법을 정하여 풍속을 바로잡고, 군역(軍役)을 부과하여 외적을 막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법을 제정하였다. 그런데 지금의 법은 황제의 자리가 안전할까, 자손이 황제의 자리를 지키지 못할까 걱정하여 법을 제정한다. 이는 일족의 법이지 천하의 법은 아니다."

'학교'(學校)에서는 '인재 양성'에만 그치지 않고, 범위를 확대하여 학교를 중심으로 인재들이 모여 공론을 조성하고 시정(時政)을 비판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천자도 자기 혼자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고, 문제를 공표하여 학교에서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해야 한다."

이동희 계명대 윤리학과 교수 dhl333@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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