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이 통일된 후에 직면하게 될 문제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보통 경제적인 문제에 중점을 둔다. 나도 그 의견에는 동감하는 바이다. 그런데 정작 남한 사람들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데 나 혼자서 심각하게 우려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이념의 차이이다. 통일 독일에서는 이 문제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 1990년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는 동독 주민의 대다수가 공산주의에 이미 등을 돌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의 후계자들에 대한 신뢰만 잃어버린 것뿐이다. 김정은이나 김정일을 욕한다고 해도 '어버이 수령'만큼은 여전히 숭배한다.
통일 후에는 이런 충성심이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많은 한국인 전문가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통일된 한국에서 하류층에서 벗어나지 못할 많은 북한 주민들이 없어진 북한 체제에 대한 미련이나 자부심을 표현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열등감을 해소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의 전통을 대변하는 정당을 '몰표'로 지지할 가능성도 높다.
몰락한 체제가 세운 동상 철거에 대한 이념분열도 심할 것이다. 한 전문가의 추측에 의하면 현재 북한 전역에는 3만 8천여 개의 동상이 있다. 주로 김일성 동상들이다. 거기다 인민군을 기념하는 동상들도 있다. 2011년에 7일 동안 북한을 여행하면서 본 동상의 수가 그때까지 내 평생 보아왔던 수보다 많았다. 북한에서는 작은 마을에 가도 김일성 부자 모습의 동상이나 벽화를 볼 수 있다. 주택이나 거리가 온통 진흙으로 뒤덮여도 모자이크벽화는 항상 반짝반짝 윤이 난다.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북한 주민들이 아껴 온 이 동상들이 저절로 철거되지는 않을 것이다. 1990년에 동독 도시마다 공산주의 영웅을 기념하는 동상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몇 년 이내 도시 정부 자체의 결정으로 별 반대 없이 철거되었다. 하지만 통일한국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과연 김일성 동상들을 스스로 철거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최근 이 문제에 대해 나는 한국인 정치학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통일한국의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동상들을 유지하려 할 거라는 예측에는 그분도 동의했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놔두면 어때요? 관광객들을 많이 유치할지도 모르겠어요" 라고 가볍게 말했다.
이런 태도에서 한국인의 국가 정신 결여를 엿볼 수 있다. 어떠한 국가도 그 국가를 파괴하려고 했던 사람을 기념하는 동상을 보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을 기념하는 동상이 거의 없는 대한민국에 한반도 면적 55%에 흩어져 세워진 몇만 개의 김일성 동상을 그냥 둔다는 것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2007년에 에스토니아 정권이 1천500명의 러시아계 시위자들의 반항을 무릅쓰고 소련 군인 동상을 철거했다. 시위자 1명이 숨지고, 43명이 크게 다쳤다고 한다. 나는 통일한국의 정권이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를 떠나 북한 정권이 세운 동상들을 나서서 철거할 의지가 없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심지어는 북한 정권의 만행에 대한 교육조차도 삼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래야 지역감정의 악화를 막고 통일한국의 통합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유화정책은 북한 주민들이 통일한국의 정통성과 권위를 존중하는 것을 더욱 방해할 것이다.
독일이 이런 심한 이념 분열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동독 주민들의 태도도 중요했지만 서독 국민의 태도 또한 중요했다. 서독 국민들에게는 확고한 국가정신이 있었기에 통일 후에도 자신들 체제의 우월성을 당당하게 주장했고 동독 정권의 인권 유린에 대한 적극적인 교육을 실시할 의지도 있었다. 그들의 국가정신은 국가주의가 아니었던 것은 물론이고 서독 역사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도 아니었다. 애국심만큼 강한 감정도 아니었다. 서독 국민의 대부분은 국기를 휘날리는 미국식 애국가를 오히려 멸시했다. 그들이 가졌던 것은 자신의 공화국이 구현하는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자긍심이었다. 한국도 그런 국가정신이 있어야만 통일과정에서 스스로의 균형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
브라이언 마이어스/동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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