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진단] '물수능 시대' 진학지도 믿을 건 학교다

입력 2014-11-25 07:03:19

이른바 '물수능' 시대다. '물수능'이 일회성이 아닌 시대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도 이런 사태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수능시험을 사교육비의 주범으로 간주하고, 수능시험 부담을 줄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평가로서 수능시험의 변별력은 결코 살아날 수 없다.

물수능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를 대량으로 만든다는 데 있다. 3년 동안의 힘든 준비가 실수 몇 개로 헛일이 되고, 자신보다 실력이 부족한 학생이 더 나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흔해져 버린 것이다. 이런 아우성 속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건 갈수록 예측하기 힘들고 요행이 되어가는 정시모집 지원이다.

사교육 기관들은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앞다투어 가채점 결과 분석지와 지원 가능 대학 배치기준표를 내놓지만 '물수능' 시대에는 이런 분석과 예측의 신뢰도가 극히 떨어진다. 게다가 사교육 기관들이 입수할 수 있는 수험생의 가채점 데이터 자체가 과거에 비해 극히 적어진 상황에서는 더욱 믿을 바가 못 된다.

또한 모집군 변화, 분할 모집 제한 등 정시모집의 변수가 엄청나게 많아진 올해 입시에서는 실제 수능시험 성적 발표 이후 나오는 사교육 기관의 배치기준표도 그다지 도움이 될 수 없다. 어떤 방법을 쓴다고 해도 전국 대학들의 세세한 전형방법 변화와 그에 따른 수험생들의 지원 경향을 예측해 맞는 길을 제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물수능'에 멍든 수험생과 학부모의 가슴에 또 한 번 대못을 박는다. 아무리 수능시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분석과 예측을 잘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은 떨치기 어렵다. 상담을 해 주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발품을 팔고, 설령 고액의 컨설팅료를 지불해야 한다 해도 지갑을 열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그 결과는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다.

이런 때일수록 원칙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먼저 누가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또 누가 더 수험생과 공감하며 세심하게 상담해 줄 수 있을까도 고려해야 한다. 수많은 변수를 분석할 수 없다면 진로와 진학 본연의 목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게 본다면 가장 먼저 믿어야 할 곳은 학교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취합한 전국 고교의 데이터를 온전히 제공받는 곳이 학교이고, 번지르르한 포장은 안되도 학생들에 대한 진정성은 훨씬 뜨거운 곳이 학교다.

지원 전략만 잘 짜면 내 점수보다 더 나은 대학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는 순간 누구든 사교육의 덫에 빠질 수밖에 없다. 사교육의 정보와 전문성이 낫다는 근거 없는 환상을 가지는 순간 입시는 로또가 되어 버린다. 사교육 기관에서 제공하는 합격 예측 서비스보다 학교의 진학 상담 프로그램이 더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김기영 매일신문 교육문화센터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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