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프리즘] 시민적 덕성과 애국심이 강한 군대

입력 2014-11-25 07:13:43

지난 11월 10일 국방부는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마련한 '병영문화혁신 추진안'을 공개했다. 앞으로 국방부는 충분한 의견수렴을 통해 최종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논란이 되는 부분은 분대장 등 우수 군 복무자에 한정해 이들이 취업하면 복무성과에 따라 1∼2%의 가산점을 부여하는 '군 복무 가산점제'이다. 군대에 가기를 꺼리는 신세대들에게 능동적 군 복무를 위해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인정되지만, 위헌 논란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필요가 있다.

자발적인 참여와 동기로 운영되는 강한 군대는 불가능한 것인가? 왜 기강 문란과 폭력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일까? 거시적으로 보면 민주화, 정보화, 신세대 등장 등 변화된 시대 상황에 맞게 군대의 규범과 질서 및 제도가 새롭게 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6'25 전쟁 이후 권위주의 정권에서 작동되었던 '징병제에 따른 병영문화'가 자발성이 요구되는 시대상황과 조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법은 크게 두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는 현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하는 것이고, 둘째는 현 징병제를 유지하되 참여적으로 운영할 방안을 찾는 일이다.

모병제로 바꾸는 일은 분단 등 국민적 합의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만큼, 후자를 충분히 해보고 난 이후 검토해도 늦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 현 징병제도의 운영상 문제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핵심은 현 징병제도가 '공화국 정신'과 '시민적 애국심'을 빠뜨린 채, 강제와 의무만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징병제 기원은 프랑스 혁명사가 보여주듯이, 시민들의 덕성(civic virtu)에 기초한 시민권(citizenship) 확대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징병제는 봉건제 억압에서 벗어난 근대국가의 상징으로, 애국심을 지닌 시민이 자발적으로 무장하여 외세로부터 자신과 조국을 지킨다는 공익에의 헌신과 봉사를 목표로 하였다.

프랑스 혁명전쟁 초기에 프랑스 시민군이 수세에 몰리자, 1793년 2월 24일 국민공회는 전제군주의 억압과 봉건제의 굴레를 타파하고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내건 민주공화국을 지키려는 긴급조치로 30만 명의 징집을 명하는 징병포고령을 발표했다. 포고령에 따라 1794년 프랑스군의 전체 병력 숫자가 전해의 26만 명에서 74만9천 명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결국, 프랑스 시민군은 유럽의 모든 전제군주들의 상비군에 맞서 전쟁에서 승리했고 프랑스공화국을 지켜냈다. 프랑스 징병제도는 공화국이라는 정치체제를 지키겠다는 시민의 정신과 미덕의 산물이었다. 시민적 미덕이란 '공공복리에 대한 헌신'으로, 공화국에 대한 외침을 격퇴하는 한편 내부 분열과 이적행위를 분쇄하는 애국심이었다.

우리의 징병제도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병력의 45%를 잃은 국군이 긴급하게 병력을 보충하려고 실시한 국민방위군 설치법에 그 뿌리가 있다. 절대적인 병력 부족을 해결하려고 급히 도입된 국민동원령은 1951년 병역법 개정을 통해 징병제로 자리를 잡았다. 프랑스 징병제도와 우리의 것이 다른 것은 전자가 공화주의 정신에 따른 시민적 덕성과 애국심이 중시되었던 반면 우리는 국가의 동원과 강제가 더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시민의 미덕과 애국심에 기초한 징병제도가 오늘날 우리에게 제대로 전승되어 운영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핵심은 군사정권이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군대를 사적으로 이용하거나 고위공직자들이 군대 복무를 회피하면서 공화주의 정신과 시민적 애국심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군대의 권위와 명예를 실추시켰다. 공공성에 대한 헌신과 자발적인 참여보다는 의무와 상명하복으로 운영되면서 각종 사고를 내는 약한 군대로 만들었다.

강한 군대를 만드는 일은 군 당국만의 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일이란 점에서 인권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다. 현 징병제도가 강제와 의무가 아니라 시민적 덕성, 자발적인 참여와 헌신, 애국심에 의해 운영되도록 체질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위공직자의 헌신, 시민교육 제도화, 시민의 정치참여와 애국심 고취, 자원봉사 생활화, 공익활동복무제 등 공화국 정신을 복원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채진원/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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