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팍스 브리태니카'라는 말로 상징화되는 세계경제에 대한 강력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단초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경제력은 20세기에 이르러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1860년대 전 세계 제조업 생산의 40% 이상을 차지했던 영국의 비중은 1914년에 이르면 14%로 낮아졌으며, 현재 3% 미만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기업가들이 기술혁신 추세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전통산업인 면방직업, 모직업, 조선업 등에 대한 과도한 집착, 노동자 계급의 호전성, 비생산적인 관료제도 등이 쇠퇴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1987년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대비 비중 4.6%를 정점으로, 2012년 3.1%로 대폭 하락하고 연평균 1만 명 이상의 청년층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대구는 과거 영국의 쇠퇴와 닮은꼴이다. 1997년 토니 블레어 내각이 해묵은 제조업 저성장과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리에이티브 브리튼'을 제시한 것과 마찬가지로 박근혜정부가 내놓은 것이 바로 창조경제다.
대구시는 삼성과 공동으로 옛 제일모직터에 대구창조경제단지를 구축하고, 이와 연계되는 창조경제타운을 경북도청 이전터에 조성해 동대구벤처밸리와 수성의료지구 내 SW융합클러스터로 이어지는 ICT 기반 창조경제벨트를 구축한다.
특히 삼성은 지역 벤처기업에 대한 지분참여, 투자유치 지원, 멘토링 등의 방법, 즉 요즈마 그룹의 플랫폼 지원 방식의 기업지원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이미 4개 기업과 협력에 관한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육성을 하려는 대구시의 노력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첫째, 경제정책 수립과 기업지원 및 평가 과정에서 강조되어야 할 핵심가치는 반드시 '창의성'이 되어야 한다. 기업평가와 지원성과 평가과정에서 연매출액 성장률이나 종업원 수 증가와 같은 단기성과 중심의 지표를 쓰는 경우가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가진 것이라곤 아이디어뿐인 스타트업이나 유년기 벤처들에게 이러한 지표를 들이대는 것은 무리다. 손정의 회장이 알리바바에 투자하고 10년을 기다린 인내심을 직시해야 한다.
둘째, 아이디어를 가진 잠재적 벤처기업가들에게 나오자마자 일발장타만을 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일신해야 한다. 연구에 따르면, 창업을 저해하는 첫째 요인은 자금이고, 둘째는 '창업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패가망신하는 두려움 앞에서는 기업가정신이 설 땅이 없다. 보수적인 금융관행과 법적용을 완화하고, 선의로 도산한 기업인의 면책범위의 확대 및 사회안전망 강화는 벤처 선진국들의 특징이다.
셋째, 삼성의 차세대 주업종들과 지역의 신성장 동력 산업들인 지능형자동차부품, 산업용 섬유, SW, 로봇, 의료기기 등을 연계하는 작업을 통해 철저한 비즈니스논리에 의한 윈윈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000년 삼성상용차와 2011년 SSLM의 사례를 포함하면 이번이 삼세판으로 발상지 논리의 감성적 접근의 한계를 충분히 경험했다. 이러한 상호 호혜적 방법은 지역 벤처들의 지원가능성과 나아가 생존가능성을 증가시키는 전략적 접근이 될 것이다. 삼성전자가 뉴욕 실리콘앨리에서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센터(OIC)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과 지역 SW업체들을 연계 협력하는 것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대구시는 삼성에게 요즈마 그룹이 하는 것처럼 SW분야가 아니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사업성이 있는 기업들에게 적극적인 글로벌 플랫폼 역할을 하도록 협의를 할 필요가 있다.
실리콘밸리는 '장소'가 아니라,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대구시와 대구테크노파크 등 창조경제 정책 관련자 모두 기억해야 한다.
권업/대구테크노파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