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현실을 잇는 금오산] <2>보물 490호 마애보살입상

입력 2014-11-21 07:17:34

"나를 못 찾는 '산방자' 다시 없도록…" 암벽 양쪽에 현신

금오산 정상 아래 자리 잡은 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 커다란 암벽의 각진 모서리 양쪽에 현신해 있다. 길을 잃어 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좌우 어느 쪽에서든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금오산 정상 아래 자리 잡은 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 커다란 암벽의 각진 모서리 양쪽에 현신해 있다. 길을 잃어 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좌우 어느 쪽에서든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고려 사람 산방자는 금오산 자락에 살았다. 그의 걸음걸이는 언제나 참새처럼 가벼웠고,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착하고 어여쁜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산방자가 어질고 부지런하다고 늘 칭찬했다.

어느 날 산방자의 아내가 병들어 누웠다. 곧 일어나리라는 기대와 달리 젊은 아내의 병은 날로 깊어졌다. 산방자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졌고, 발은 땅바닥을 질질 끌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흙먼지가 일어났다. 동네 사람들이 말했다. "굿을 해라."

산방자는 가난했다. 그는 굿을 하는 대신, 신령한 힘을 간직한 금오산에 올라가 기도했다. 낮에는 아픈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위해 밭일을 했고, 해가 지면 집을 나서 산으로 올라갔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바람 부는 날에도, 달 없는 날에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엎드려 기도하던 커다란 바위 안에서 보리살타가 나타나 물었다. "너의 아내는 어떤 사람이냐?" "제 아내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계절을 알고, 사람살이를 압니다. 봄에는 냉이를 캐고 쑥을 뜯습니다. 그래서 이른 봄에 우리 아이들은 마을의 어느 집 아이들보다 먼저 향이 나는 나물국을 먹습니다. 여름에는 모를 심고, 가을에는 추수를 합니다. 벼베기를 끝내면 산에 올라가 땔감을 줍고 버섯을 따고, 밤을 줍습니다. 겨울에는 첫닭이 울 때까지 잠들지 않고 실을 뽑고 베를 짭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겨울에도 춥지 않습니다."

보리살타는 성심으로 기도하는 산방자와 그의 착한 아내를 가엾게 여겼다. 하여 운명을 어기고 그의 아내를 살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내일 밤 자시(23~1시)에 아내를 여기로 데려오라."

산방자는 나는 듯이 집으로 달려왔다. 때는 겨울이었고 중병을 앓는 사람이 집 밖으로 나갈 날씨가 아니었다. 날이 풀리기를 기다리던 산방자는 해가 중천을 지나자 아내를 업고 금오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홀로 걸을 때는 2시진(時辰 : 2시진은 4시간)이면 닿을 거리였다.

그러나 아내를 업고 오르는 길은 멀고 험했다. 산방자는 보리살타와 약속한 시각에 닿지 못했다. 그가 죽을힘을 다해 커다란 바위 앞에 도착했을 때, 보리살타는 바위 안으로 사라지고 없었고, 아내는 이미 싸늘하게 얼어 있었다. 산방자는 아내의 주검을 안고 울었다. 아내를 살리러 온 자리가, 아내를 묻을 자리가 되어버렸다며 울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따뜻한 방에서 아내가 숨을 거두도록 했을 것이다. 이처럼 추운 곳에서 얼어 죽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방자는 아침이 부옇게 밝아올 때까지 울었다. 박명과 함께 보리살타가 바위에서 다시 몸을 드러냈다.

"진실로 안타깝구나. 내가 너를 기다리지 않아 너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구나. 네가 다시는 아름다운 사람을 잃지 않도록 내가 약속하마. 이제부터는 내가 이 바위에서 나와 너를 기다리겠다. 지금까지는 네가 나를 기다렸지만, 이제는 네가 너를 기다릴 것이다."

금오산 정상 아래 자리 잡은 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구미시 남통동 산 24-1)은 커다란 암벽의 모서리 양쪽에 현신해 있다. 주변에 편편한 바위도 많지만 이 보살은 각진 모서리에 현신해 있는 것이다. 인생에서 모질고 각진 모서리를 만나 힘겨운 사람을 위로하겠다는 뜻이다.

보리살타가 모서리를 중심으로 좌우로 현신한 것은 길을 잃어 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좌우 어느 쪽에서든 그를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마애보살부처는 오랜 기도와 정성을 올린 뒤에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보살이 서둘러 바위 안으로 떠나는 바람에 아내를 잃은 고려 사람 '산방자'를 만난 뒤로 언제나 그 자리에 현신해 사람을 기다린다. 그래서 보살의 얼굴은 다소 미안한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다.

마애보살입상은 얼굴은 비교적 풍만하고 부피감이 있다. 눈이 가늘고 입은 작아 신라시대와 달리 고려시대 보살상임을 보여준다. 상당한 수준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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