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한쪽에 빨간 차가 도착했다. 소방차가 아니다. 밥차다.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봉사자들이 차에서 내린다.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줄을 선다. 삽시간에 줄은 기역 자를 이룬다.
봉사자들의 손은 재바르다. 건장한 남자들이 밥솥과 찜통을 나르면 팔 힘 좋은 여자들이 밥주걱을 꺼내 든다. 주로 키 큰 여자들은 국을 푸고 키 작은 여자들은 반찬을 담는다.
밥을 먹으려는 사람들도 바쁘기는 매한가지다. 줄을 서고 자리를 지켜야 한다. 나물국인가 고깃국인가도 관심이 있고, 마른반찬이 무언지도 궁금하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조금 참기로 한다. 온 신경이 밥으로 치닫는다.
그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식판을 주고받는 사이 어렵지 않게 공통점을 발견한다. 이를테면 '밥주걱!' 하면 흥부의 볼기짝을 후려친 놀부 마누라를 연상한다. '밥!' 하면 젊은 한때 미치광이처럼 헤매다 돌아와 이불 깔린 아랫목을 발로 찼을 때 뚜껑 열리며 반겨주던 어머니의 밥과 그 어머니 죽은 후 며칠 안 가 배가 고파 숟가락을 들었던 치욕스러운 밥을 기억해 낸다.
밥은 그런 것이다.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출근하면 신경질 내는 상사조차 덜 노여운 것이 밥이고, 부부싸움 끝이라도 시원한 북엇국에 김 오르는 밥 슬그머니 밀어주면 속이 풀리는 것이 밥이다. 오죽하면 지금도 아프리카 여인들은 밥솥이 미어지게 밥 한번 실컷 해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겠는가.
왁자지껄해서 돌아보니 식판을 받던 남자가 반찬 담는 여자와 언쟁을 벌이고 있다. 꽁치 한 토막 더 달라고 했다가 거절을 당한 모양이다. 남자는 그깟 꽁치 한 토막쯤 더 주면 어떠냐는 것이고 여자는 골고루 나누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남자는 여자가 야박하고, 여자는 남자가 꼴 같지 않다.
남자가 드디어 식판을 팽개친다. 그러나 서 있는 줄만 당겨질 뿐 성난 남자에게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남자의 잘못이다. 애꿎은 밥만 손해 보지 않았는가. 치욕은 순간이지만 밥은 그 어떤 것보다 힘이 세다. 청상에 남편을 잃어 땅에 묻고 돌아온 며느리에게 치매기 있는 시어머니는 밥 달라고 하더라지 않던가.
봉사자도 심했다. 꽁치가 안 되면 무라도 한쪽 더 얹어주지. 밥은 곧 살아있음의 증거인 것을. 높거나 낮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먹어야 사는 것이 밥인 것을.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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