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까지 뇌종양…학업 중단하고 공장 일
"바라는 것 없어요. 동생이 다시 건강해지고 아버지가 불편하지 않게 생활하실 수만 있다면…."
24살 송준표(가명) 씨. 친구들은 대학에 다니며 여행도 다니고 연애도 하지만 준표 씨는 또래 같은 생활을 꿈꿀 수 없다. 뇌종양으로 일주일에 몇 번씩 병원을 오가야 하는 여동생과 치매로 집조차 제대로 찾지 못하는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사실상 가장이기 때문. 아직 어린 나이에 아픈 가족들이 짐스러울 만도 하지만 준표 씨는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가족을 생각하는 준표 씨의 마음은 그의 꿈도 바꿔 놓았다. 아버지와 동생을 위해 방사선 치료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
"아버지와 여동생을 돌보는 건 당연히 제가 해야 될 일인걸요. 두 사람이 하루빨리 건강해지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게 없어요."
◆치매에 걸린 아버지, 가장이 된 20대 청년
준표 씨가 어렸을 적만 해도 아버지는 노래방을 운영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있었다. 어린 여동생도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 전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홀로 아이들을 돌보던 아버지는 20대부터 앓아오던 당뇨가 심해지면서 건강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당뇨 합병증으로 눈이 점점 흐려지더니 몇 년 전부터는 치매 증상까지 보였다.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아버지는 어린아이가 되어갔다.
"아버지가 올해 겨우 45세인데 치매가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씨 좋다는 소리를 듣던 아버지인데 이젠 대소변도 못 가릴 정도의 어린아이가 되셨으니…."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던 준표 씨는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학업을 중단하고 일을 시작했다. 치매로 24시간 돌봐야 하는 아버지와 어린 동생은 할머니에게 부탁하고, 공장에서 돈을 벌었다. 이후 사정을 딱하게 여긴 분이 자신의 치킨 가게에 준표 씨를 점장으로 취직시켜줬고, 가족을 위해 쉬는 날도 없이 일했다.
"치킨 가게 옆에 있는 좁은 방에서 지내면서 돈을 벌었죠. 그때는 돈만 벌면 가족들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뇌종양이 집어삼킨 금쪽같은 여동생
하지만 가족의 행복은 무참히 깨졌다. 동생 혜린이가 갑작스레 뇌종양 진단을 받은 것.
올 초 혜린이는 갑자기 오른손에 마비가 오면서 숟가락을 뜨거나 글씨 쓰기를 어려워했다. 단순히 근육 문제라고 생각해 정형외과에서 약을 지어먹고, 한의원에도 가봤지만 마비 증상은 점점 심해지고 말까지 어눌해졌다.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했더니 혜린이의 머리 속에 손바닥만큼 커다란 뇌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게다가 종양은 좌뇌 중앙에 중요한 신경이 모여 있는 자리에 생겨 더욱 위험한 상황이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준표 씨는 일을 그만두고 혜린이를 데리고 병원을 오갔다. 지역 대학병원에서는 혜린이의 병을 수술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고, 올 3월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가게 됐다.
"친구들을 좋아하던 동생이 학교를 그만두고 병원만 다녀야 하는 게 마음 아팠어요.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동생이 아픈 사실도 몰랐다는 게 너무 미안했죠."
남매는 석 달가량 서울 병원에서 지내며 항암치료를 받았다. 준표 씨는 병원에서 쪽잠을 자가며 매일같이 동생 옆을 지켰다. 혜린이에게 준표 씨는 아빠이자 엄마가 됐다.
애석하게도 치료 이후에도 혜린이의 머리 속 종양은 줄어들지 않았다. 종양 위치가 위험해 섣불리 수술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매는 다시 대구로 내려와야만 했다.
◆24살에겐 너무 무거운 치료비와 생활비 걱정
최악의 상황에도 준표 씨는 눈물짓거나 힘든 내색을 비추지 않는다. 자신이 힘들어하면 아버지를 돌보는 할머니와 아픈 여동생이 미안해하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다른 또래 애들 보면 아직 철이 없는데 우리 손자는 너무 착하고 듬직하다"며 준표 씨에 대한 마음을 표현한다.
하지만 할머니와 동생이 보지 않는 곳에서 준표 씨의 한숨은 깊어진다. 앞으로의 치료비와 생활비 걱정에서다. 준표 씨가 일을 그만두면서 가족들의 생계조차도 막막해졌다.
혜린이가 일주일에도 몇 번씩 열이 40℃ 이상 올라가 응급실을 오가는 것도 준표 씨에겐 큰 부담이다. 항암치료로 면역력이 약해진 탓에 버스도 탈 수 없고 택시만 타고 다녀야 하는데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오갈 곳이 없는 준표 씨와 혜린이,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판잣집에 함께 살고 있다. 좁은 방에 5명이 지내야 하는데다 난방조차 제대로 할 수 없어 올겨울을 날 생각만 하면 한숨이 나온다.
"항암치료로 머리가 다 빠진 혜린이가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학교에 가고 싶어할 땐 마음이 너무 아파 저도 모르게 뒤에서 눈물을 흘려요. 아버지와 동생이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뭐든 다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김봄이 기자 b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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