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통해 '해체'라는 운명을 맞은 해양경찰청이 그로부터 6개월 만인 모레 19일 영영 문을 닫는다. 세월호 참사의 결과물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전격적인 '해체' 발표에 깜짝 놀랐다. 정부 기관이라도 하루아침에 문을 닫고 간판을 내릴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이런 본보기가 있으면 사회의 긴장도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아이들 세계에서도 옆 자리의 친구가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으면 일단 긴장하고 눈치를 살피는 법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사정이 더 심각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해양경찰청이 억울해할 만한 곳들이 너무 많았다.
대학입시 철이다. 그래선지 교육부가 국민들 열불 차게 만드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잘못된 문제를 1년씩이나 잘못이 아니라고 고집하다가 법원으로부터 망신을 당했다. 한 문제의 점수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는 수험생과 그 가족의 사연을 조금이나마 헤아렸다면 그런 무신경은 보이지 못했을 텐데. 등급이 뒤바뀌고 합격이 불합격되는 판국인데 '교과서대로'를 외치며 무신경, 무감각,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당국자들의 강심장을 보면서 국민들은 교육부의 '존재의 이유'를 의심했을 것이 분명하다. 1년 동안이나 시간을 끌다 다음해 입시가 닥쳐서야 판결을 내린 법원도 국민들 눈에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런데 올해도 문제 오류 논란이 이어진다. 이 논란의 결과도 버티기로 일관하다 내년 이맘때 나올까? 벌써부터 한숨이 난다.
우리나라 교육은 대학입시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만큼 대학입시의 결과가 한 개인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는 나라는 없다. 이런 국민감정을 뼈저리게 느껴야 할 교육 당국이 제일 무신경한 것 같다. 욕이 튀지 않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간판을 내리라고 하고 싶다.
군대 내 사건사고 이야기도 올 들어 유독 많이 쏟아졌다. 자녀를 믿고 군대에 보내기 겁이 날 정도이다 보니 국군의 위상은 말이 아니다. 사기충천해야 할 군대 내부의 분위기는 '조심조심'을 제일로 삼아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사고가 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잊을 만하면 불상사가 터졌다. 대책이라고 내놓지만 재탕 삼탕이다 보니 미덥지가 않다. 원인 제공자들이 대책도 내놓으니 그럴 수밖에. 빈발하는 병영 내 사고와 이어지는 성추행 사건으로 "병사들은 선임병을 조심하고, 여군은 남자군인을 조심하라"는 이야기마저 나돈다고 하니. 그렇다고 국방부를 해체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대통령이 '이적행위'라고 할 정도의 방위산업 관련 비리도 도를 너무 넘어섰다. 해양경찰청과 비교하면 방위사업청은 몇 번이나 해체돼야 마땅할 정도라는 게 솔직한 국민감정이다. 방위사업청의 비리는 나라와 국민의 존망을 직접 그리고 몇 배로 위협하는 중대범죄이기 때문이다. 사극에서라면 '대역죄'에나 해당하지 않을까. 못된 짓을 한 사람들이나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공모를 했다면 다 같이 나쁜 X들이고, 몰랐다면 무능해서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동네북인 정치권도 '명성'에 걸맞게 국민들 속을 뒤집어 놓기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정도였다. 해체리스트라도 작성한다면 맨 윗줄에 놓일 대상이다. 세월호 참사에도 지지고 볶느라 '세월'을 허송했다. "왜 저런 무익 무득 무용의 국회를 해산도 못하느냐"는 질타가 쏟아진 게 당연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외부를 향해서는 개혁을 떠들면서 자기들 내부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했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추상 같고 남에게는 춘풍 같으라'는 말은 역시 좌우명에나 쓰일 뿐 우리 정치권에 적용하기에는 무리였다. 차라리 총선거일이나 빨리 왔으면.
어디 그뿐인가. 문제가 터지고 여론이 나빠지면 내로라 하는 권력기관들도 소나기 피하기에 급급했다. 잔뜩 힘이 들어갔던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강도 개혁을 외쳤지만 물론 성과물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셀프 개혁은 개혁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러니 해양경찰청이 "우리보다 더한 데도 얼마나 많은데"라는 억울한 마음을 가지지 않겠는가. 다만 이래저래 문을 닫고 간판을 내리다 보면 이 나라에서 남아날 게 별로 없어 보여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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