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내가 만난 천사들

입력 2014-11-17 07:19:10

▲장혜승
▲장혜승

천사 하면 날개 달린 사람의 형상이 그려진다. 딸아이 졸업식(MBA)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미국에 갔었다. 지구촌 색색 인종들이 한데 모인 장관의 졸업식, 글로벌시대를 실감하는 첫 경험이었다.

남편과 딸아이와 셋이서 20일 동안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했었는데 아주 먼 곳은 비행기를 이용했지만 대개 렌트한 승용차로 움직였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을 넘어가는데 철저한 조사로 인해 약 3시간 지체되는 동안, 우리나라도 이렇게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국경을 넘어 온타리오 호수를 돌아 몬트리올에 도착했을 때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다음 날도 비바람은 난폭하게 오락가락했다. 해거름 때 내일 준비물을 위해 큰 마트 앞에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마지막 내린 내가 무심코 문을 닫았는데 시동이 걸려 있는 채 자동차 문이 잠겨버렸다. 사색이 된 딸아이가 전화기를 들고 이리저리 수소문하더니 한참 후에 공구 가방을 든 한 사람이 달려왔다. 온갖 기구로 애를 써도 차 문이 열리지 않자 그 사람은 기어이 가버렸다. 몬트리올의 유월은 추웠다. 비바람까지 심술을 부렸다. 막막함이란 말은 그때에만 쓸 수 있는 말 같았다. 남루한 차림의 노랑머리 한 남자가 다가와서 솰라솰라하더니 거짓말처럼 문을 열었다. 사례를 표하니 기어이 거절하고 돌아가는데 우리는 코가 땅에 닿도록 수없이 절을 했다.

미국의 마지막 밤을 보낸 뉴저지 힐튼호텔 매니저가 존에프케네디공항까지는 두 시간이면 된다고 했으나 우리는 일찍 서둘렀다. 내비게이션이 없었던 때라 지도를 보고 조심조심 가는데 길을 잘못 들어 맨해튼 시내로 들어서고 말았다. 딸아이는 주유소마다 들러 길을 물었으나 모두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 비행기를 놓치면 항공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했다. 한 주유소에 뛰어들어 가더니 키가 큰 흑인 두 사람과 함께 나왔다. 그 길을 잘 아니까 자기 차를 따라오라 했다. 무조건 바짝 붙어 따라갔다. 복잡한 맨해튼 시내를 이리저리 빠져나가더니 인적이 없는 길로 자꾸만 갔다. 아무래도 우리가 큰일을 당할 것만 같아 심히 불안했으나 그 사람들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따라가니 공항 표지판이 보였다. 갈래 길이 있었는데 우리가 완전한 길로 들어설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자동차 경적을 울리며 손을 흔들어주고 되돌아갔다.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마치니 시간이 딱 맞아떨어졌다. 딸아이 홀로 남겨놓고 돌아오는 눈물의 비행기 속에서 알았다. 날개도 없는 그 사람들은 분명 천사였고, 혼자서 먼 길 되돌아가는 딸아이에게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나서 집까지 무사히 데려다 줄 것이라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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