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盤中)조홍(早紅)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 즉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하노라'. '감나무골'로 불리는 청도읍 유호리가 고향인 수필가 박양근은 '청도 반시'라는 수필작품에서 조선 중기 문인인 노계 박인로의 시조 '조홍시가'(早紅柹歌)를 떠올린다. 이 시조는 부모에 대한 효성을 노래한 것으로 회자되는데, 박인로가 한음 이덕형의 집에 놀러 갔다가 먹으라고 내놓은 감을 보고 '육적회귤'(陸績懷橘)이란 중국의 고사를 인용해 지은 것이라고 알려졌다.
'유자 아니라도…'라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오(吳)나라의 육적이란 사람이 당대의 세력가였던 원술(袁述)의 집에 갔다가 접대 음식으로 내놓은 유자 세 개를 품안에 숨겼다가 발각되었다. 그 까닭을 물으니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고 싶어서…"라고 대답해 그 효성에 모두가 감동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그래서 박인로는 '소반에 담긴 일찍 익은 붉은 감이 곱게도 보여, 유자가 아니라도 품안에 몇 개 집어넣고 싶지만, 가져간다 해도 반가워할 어머니가 없으니 그것 때문에 슬퍼한다'고 읊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얘기가 잘못 알려졌다는 주장도 있다. 실은 영남학파를 대표하는 유학자였던 여헌 장현광이 성리학을 배우러 온 박인로에게 조홍감을 대접하며 그것을 소재로 시조를 짓도록 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수필가 박양근은 고향 산기슭에 즐비하던 감나무와 그것을 바라보고 선 낡은 사진첩 속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조홍시가'에 주목한 것이다. 그에게 어린시절 즐겨 먹던 청도반시는 곧 정겨운 고향마을이자 따뜻한 아버지의 품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전국적인 유명 특산품인 청도 반시가 올해 유례없는 풍작을 맞았는데도 농민들이 가격 하락으로 한동안 시름에 잠겨 있었다고 한다. 집집마다 나이 든 어른들이 애써 지은 감 농사가 풍요 속의 빈곤을 맞게 되었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그런데 청도농협이 온갖 노력 끝에 대기업에서 2만 상자분의 주문을 받아, 출하를 포기한 채 넋을 놓고 감나무만 바라보던 농민들에게 웃음을 되찾아줬다는 소식이다. 농협의 '조홍시가' 같은 정성이 도회지의 기업인들의 효성을 움직인 모양이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