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서각의 시와 함께] 살구꽃 환한 봄날

입력 2014-11-13 07:50:53

살구꽃 환한 봄날

이종문(1955~ )

생각

같아서는

구두를 벗어들고

다짜고짜 귀싸대기를 휘갈기고 싶은 놈과

웃으며 밥을 먹는다

살구꽃

환한

봄날

-시조집『묵 값은 내가 낼게』, 서정시학, 2014.

꽃은 힘이 세다. 귀싸대기를 때려주고 싶은 놈과도 웃으며 밥을 먹게 하는 힘 말이다. 꽃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 아름다움일 것이다. 이 시는 밥 먹는 일을 이야기하지만 독자는 살구꽃의 환한 아름다움을 떠올릴 것이다. 아름다운 그림, 아름다운 음악, 아름다운 자연은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심성까지도 아름답게 한다.

사람이 남의 담장을 넘으면 죄를 짓게 된다. 넝쿨장미는 담장을 넘어도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아름답기 때문에 장미의 월장은 무죄라는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난다. 옛날에도 미인의 아름다움이 나라를 기울게 했다. 클레오파트라, 양귀비, 서시가 그러했다. 아름다움은 힘이 세다.

무심코 켜 놓은 종편에서 귀싸대기를 때려주고 싶은 사람들이 얼굴을 내밀고 흰소리를 한다. 들리는 소식마다 심히 아름답지 못한 요즘이다. 살구꽃 환한 봄날은 언제 오는가. 식탁에 꽃 한 송이라도 꽂아야 할 것 같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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