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최고의 말 가운데 하나가 '사이버 망명'이다. 국가기관의 감시를 피해 누리꾼들이 다른 나라에 서버를 둔 인터넷 서비스로 이동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이 말이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2007년 인터넷 실명제 시행, 2008년 사이버 모욕죄 도입 추진 때에도 이미 해외 포털 사이트로 대거 이동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만큼 온 국민의 관심을 끌고, 많은 국민이 구체적으로 사이버 망명을 감행하기는 처음일 것이다.
'카카오톡'에서 '텔레그램'으로의 이동이 폭발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그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표현의 자유를 찾아서 300만 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새로운 소통 매체로 배를 갈아탔다. 정치, 사상, 종교 등의 이유로 탄압이나 위협을 받는 사람이 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나가는 것이 '망명'이다. 실제적이든 사이버상의 것이든 망명 행위는 감시와 억압의 어두운 그림자에 연결된다. 사적 대화가 누군가에게 실시간으로 노출되고, 무심코 던진 정치적 발언 하나가 어떤 불이익으로 되돌아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순간, 사이버 망명은 익숙한 것을 버리고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하는 분노의 탈출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누가 이런 사이버 망명과 공동체의 분열을 부추기고 있는가? 그 직접적 책임은 이용자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없거나 약했던 인터넷 서비스 운영자에게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운영자들이 수사기관의 합법적 요구에 협조하는 정도를 넘어 마치 수사기관의 하청 조직처럼 움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가 될 만한 대화 내용을 회사에서 직접 검열해서 수사기관에 넘겼다. 범죄 혐의가 없는 몇천 명의 개인정보가 수사를 받는 사람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유출됐다.
물론 서비스 운영자의 무책임한 배신행위의 배후에는 정보, 수사기관이 있다. 최근 검찰은 전담수사팀을 꾸려 사이버 명예훼손 행위를 실시간 적발하겠다고 대국민 엄포를 놓았다. 주요 인터넷 회사 대표들을 불러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요구하는 작전 회의를 열기도 했다. 검찰이 뜬금없이 사이버 명예훼손 행위에 조직의 온힘을 쏟는 듯한 자세를 취한 것은 '대통령에 대한 모독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계기였다. 이번 사이버 망명 사태의 진원지가 청와대임을 뜻한다.
대규모 사이버 망명이 정보기술 강국이라는 한국에서 일어난 것은 경제적 손실을 넘어 국가적인 큰 망신이다. 한국 사회, 특히 인터넷 공간이 자유롭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 주는 뚜렷한 징표로 해석된다. 자유가 크게 제약받는 상황에서 남아 있는 사람들도 더는 남을 믿지 못하고, 상호 불신의 늪에 빠지게 된다. 누리꾼들은 말수가 줄어들고, 대화와 토론은 단절되며, 이쪽저쪽 편이 갈릴 수밖에 없다. 사회 단위 조직의 내부망에서도 '명예훼손'이라는 철퇴가 무서워 대화의 실종과 소통의 황폐화가 진행 중이다. 힘 있는 감시자의 눈치를 보면서 소신을 댓글 한 줄에 표현할 용기조차 잃어버린 것이 요즘 한국 인터넷 공간의 실상이다.
한국 누리꾼들이 겪는 이런 정신적 공황 상태를 보면, 대통령의 발언은 역설적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고 하겠다. 국민이 이미 인터넷 접속 자체를 꺼리고, 나아가 엄격한 자기 검열을 생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외국 언론에서 걱정할 정도로 표현의 자유가 심하게 위축되었다. 국민이 느끼는 체감 상의 민주주의는 몇십 년 전으로 빠르게 뒷걸음질치고 있다.
무릇 모든 사회 조직의 구성원과 국민이 최대의 관심을 두는 인물은 그 조직의 리더이고, 나라의 대통령이다. 지도자에 대한 비판과 풍자의 허용 폭은 민주주의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지도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풍자는 자기 성찰과 소통, 책임지는 정치로 의연하게 답해야 하는 것이지 구성원의 입을 억지로 틀어막음으로써 해결하려 할 것이 절대 아니다. 구성원들에게 당당하고, 스스로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지도자가 조직을 하나로 모으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법이다.
이정복 대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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