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타인의 방

입력 2014-11-10 07:25:39

지난 3주간 '나름대로 수능 특집'이라는 주제를 잡고 EBS 수능 연계 교재에 나오는 문학 작품과 문법 내용 중 수능과 관계없는 사람들도 알아두면 좋을 내용을 실었다. 오늘은 현대소설 작품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작품인 최인호의 '타인의 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최인호는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영자의 전성시대'와 같은 대중 영화들의 시나리오 작가였기 때문에, 탁월한 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의 소설 작품들은 영화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풍부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독특한 표현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 경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초기 작품인 '타인의 방'이다.

출장을 갔다가 밤늦게 귀가한 '그'는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이 없자 문을 두드린다. 그러자 이웃집 사내가 나와서 누구냐고 묻는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3년을 이 아파트에 살았지만 본 적이 없다고 이야기를 한다. 열쇠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 '그'는 아내가 친정으로 간다는 거짓 메모를 써 놓고 나갔다는 걸 알자 분노와 고독을 느끼며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일부러 노래도 불러보고 "역시 집이란 즐겁고 아늑한 곳이군"이라고 말해 보지만 그것은 타인의 소리처럼 느껴진다. 그런 '그'에게 집안의 물건들이 말을 걸어온다. '그'가 그것을 환각이라고 생각하고 무방비로 있을 때 집안의 물건들이 그에게 달려들고, 저항하던 그는 점차 몸이 굳어져 사물이 되어간다. 다음다음날 아내가 방에 들어온다. 흐트러진 방을 보고 놀라지만 이내 안정을 찾는다. 그러곤 뭔가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녀는 곧 잃어버린 것이 없는 대신 새로운 물건이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물건은 그녀가 매우 좋아했던 것이었으므로 며칠 동안은 먼지도 털고 좀 뭣하긴 하지만 키스도 하긴 했었다. 하지만 나중엔 별 소용이 닿지 않는 물건임을 알아차렸고 싫증이 났으므로 그 물건을 다락 잡동사니 속에 처넣어 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그 방을 떠나기로 작정을 했다.

이전에 우리는 한동네에서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알던 공동체 사회 속에서 살았었다.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로의 변환은 공동체 사회의 해체를 의미한다. 단절된 인간관계 속에서 인간은 고독해질 수밖에 없고, 고독을 이해하지 못한 인간은 사물과 다를 바가 없어지는 것이다.(부부간의 관계도 위에서 보듯 싫증 나면 버리는 사물처럼 된다) 급격한 산업화가 가져온 윤리적 혼란을 독특한 방식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은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모순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평하기도 한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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