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키덜트들 만나보았더니…
'보수적인 동네'라는 선입견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구경북이라는 지명이 주는 어감은 왠지 모르게 '어른'스럽다. 그래서 키덜트들을 찾기도, 키덜트들이 마음 놓고 활동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기자가 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으로 빙의해 여의주를 찾듯이 대구지역에 숨어 있는 키덜트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이들은 TV에 그려지는 '오덕후'(일본어 '오타쿠'를 한국 네티즌들이 변형해 쓰는 말)의 이미지처럼 사교성 없고 외골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열심히 일 잘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디즈니 캐릭터를 사랑하는 대학생
이새봄(20) 씨는 어릴 때부터 봐 왔던 디즈니 만화영화 여주인공들의 팬이다. 올해 초 인기를 끈 '겨울왕국'은 영화관에서만 세 번을 봤을 정도이고, 디즈니 만화영화의 캐릭터를 분석한 글이나 영화평론도 모두 찾아 읽어본다.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의 오로라 공주다. 이 씨는 "디즈니 만화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다 보니 지치고 힘들 때 디즈니 만화영화를 보고 있으면 긍정적인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 씨는 디즈니 마니아답게 영화 DVD나 비디오테이프는 물론이고 캐릭터 관련 상품들도 계속 모으고 있다. 이 씨가 아직 학생 신분이라 큰돈을 쓰기 어려워 수집품 대부분은 문구류이다. 이 씨는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보니 인형 같은 큰 물건은 두기 어려워서 문구류나 스티커 등을 모으는 데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들도 처음에는 "차라리 화장품을 더 사는 게 낫지 않느냐"며 의아해했지만, 지금은 이 씨의 디즈니 캐릭터 사랑을 잘 알고 선물해 주기도 한다.
키덜트라 불리는 것에 대해 이 씨는 "만화영화 캐릭터는 어른이라도 충분히 좋아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며 "어른이지만 아직 순수한 동심을 갖고 있다는 말로 들린다"고 말했다.
◆RC카를 즐기는 직장인
보험회사 영업팀장으로 일하는 이효석(36) 씨는 주말이면 자신의 '애마'인 드리프트용 RC카를 들고 칠곡군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이 씨와 함께 RC카를 즐기는 동호회 회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만든 RC카 전용 트랙이 있다. 금요일 저녁에는 이 씨 혼자, 토요일에는 이 씨와 그의 아들이 함께 트랙으로 향한다.
이 씨가 RC카를 즐기게 된 것은 7년 전부터다. 결혼 후 완구 무역업을 하던 처가를 통해 선물받은 중고 RC카가 이 씨의 숨어 있던 동심을 일깨웠다. 이 씨는 "RC카 모터 소리에 사회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저 멀리 날아가고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며 "동호인들을 만나면 사회 속 자신의 지위는 온데간데없고 신나게 RC카 경주를 즐기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 씨는 7세인 둘째 아들과 함께 RC카를 즐기는데 그 덕분에 아들과 대화도 늘어 더 친밀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직장동료들이 처음에는 '장난감 갖고 논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그 세계를 알고 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며 "다른 어른들이 낚시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것처럼 RC카 또한 성인이 즐길 수 있는 취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레고 모으는 피아노 강사
프리랜서 피아노 강사인 이한나(33) 씨는 결혼 전 남편 심성민 씨에게 "나는 레고 마니아"라고 고백했다. 남편 심 씨는 "그러면 얼마나 모았는지 들고 와 보라"고 했고 컬렉션을 공개하는 날 심 씨는 "레고 인형이 가방에서 계속 나오더니 급기야는 카페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며 "'결혼 후에도 적당히 해야 할 텐데 레고에 돈을 많이 쓰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작은 레고 인형을 모으는 것이 취미다. 많은 레고 아이템 중 레고 인형을 모으게 된 계기는 "혼자 살 때 레고 블록 제품을 사면 조립한 뒤에 둘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씨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레고 미니 인형 시리즈다. 주로 인터넷을 통해 구입하는데 봉지에 어떤 인형이 들어 있는지 몰라 마치 '뽑기'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하와이로 간 신혼여행에서 쇼핑 목록 중 레고 인형 열쇠고리는 빠지지 않아 한 쇼핑몰에서 쓸어담다시피 했다. 이 씨는 "레고 인형 모으기는 소소한 일상에서 주는 작은 즐거움"이라며 "'키덜트'라 불려도 크게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생계수단이 된 프라모델 마니아
대구 남구 대명동의 프라모델 전문숍 '마이하비'를 운영하는 이호원(41) 씨는 자신이 좋아하던 프라모델이 자신의 생계까지 책임진 사례다. 음악을 좋아해서 대학 때 밴드 활동도 했었고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 제작부에서도 일했던 이 씨는 자신이 좋아했던 모든 것들의 근원이 '프라모델'에 있었음을 깨닫고 아예 프라모델 판매와 작업을 겸할 수 있는 아지트를 차려버렸다.
이 씨가 '마이하비'를 운영하기 시작한 때는 2003년이다. 이 씨는 그전부터 프라모델을 취미로 삼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 씨로부터 들은 프라모델 조립 과정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조립→해체→연마→도색→재조립'이지만 이 과정을 모두 거치는 데에는 짧게는 15일, 길게는 한 달 이상이 걸린다.
이 씨는 "'키덜트'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해석해야 하지만 대중들은 '특이한 취미'로 인식하고 언론은 이러한 시선을 바탕으로 낙인찍기를 해 버렸다"며 "어릴 때의 취미를 성인이 돼서까지 끈기있게 들고가는 것도 칭찬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구해준 피규어를 모으는 사장님
장진혁(31) 씨는 온라인 마케팅 전문업체를 운영하는 어엿한 사장님이다. 취미는 '피규어 모으기'라 한다. 사실 그에게 피규어는 큰 의미가 있는 물건이다. 직업군인을 꿈꾸던 장 씨는 훈련 도중 입은 무릎 부상으로 결국 군인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군인 이외에 다른 꿈을 꾸지 못했던 그에게 방황의 시간이 찾아왔고 그 방황을 끝내게 해 준 것이 바로 피규어였다. 장 씨는 "피규어를 수집하고 만들어보면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방황과 마음의 상처도 많이 치료됐다"고 말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피규어는 약 30점인데, 많을 때는 100점까지 보유했었다. 조금씩 정리하고 자신의 컬렉션을 다듬어서 남은 것이 30점가량인데, 그중 가장 비싼 피규어는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피규어로 70만원에 구매한 것이 지금은 시가 250만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단다.
장 씨는 "피규어 수집을 즐기는 사람은 대부분 평범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며 "어찌 보면 동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취미를 즐기는 사람들인데 언론이 몇몇 과하게 즐기는 사람들을 부각시켜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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