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기행 아시아를 가다] 카렌족의 상가(喪家) 풍경(2)

입력 2014-11-06 07:46:54

발인 날 관 옆에서 가족사진 촬영…목사 주재로 산소 만들고 빨간 십자가 세워

◆마지막 가족사진

오전 8시, 상갓집은 아직 한가하고 마당에는 밤을 샌 듯한 청년 몇이 충혈된 눈으로 포커를 하고 있다. 망자의 노잣돈이라도 되는지 관 위에는 100바트(약 1만6천원)짜리 지폐 4장이 테이프로 꼼꼼히 붙여져 있다. 그 옆에는 그가 쓰던 체크무늬가 선명한 깔리양 천가방, 손때 묻은 칼 두 자루, 밥, 과자, 물컵, 쌀, 근처 산에서 꺾어온 작은 물통에 넣어놓은 말라가는 화초 한 다발, 벽에는 큼지막하게 나무로 만든 빨간 십자가가 기대어 있다.

안에는 아직 졸음이 가시지 않은 일가친척들이 반쯤 벽에 기대어 있는가 싶더니,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한다. 가족들은 관 옆에서 서러운 가족사진을 찍고 큰아들이 관 뚜껑을 열어 마지막을 확인한다. 일순 부인과 자녀들의 얼굴이 굳어진다. 마을 청년들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관을 운구해 밖으로 나가 미니트럭에 싣는다. 사람들은 차와 오토바이에 나누어 타고, 나도 누군가의 오토바이 뒤에 오른다. 하관을 주재할 목사님도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간다.

◆나비야, 꽃산 가자

5분쯤 거리의 마을 근처 산, 중간에 두세 번 차를 세우고 길가 나뭇가지를 꺾어 길 위에 놓더니 그 위로 지나간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상여에서 꽃을 뽑아 던지기도 하던 모습이 실루엣처럼 겹친다.

평소에 인적이 드문 거리에 갑자기 오토바이 굉음이 울리자 후두둑 새들이 솟구친다. 멀리서 코끼리만 한 버펄로가 굵은 등뼈를 실룩거리며 휘둥그레 눈알을 굴린다. 싸리 울타리 너머 고추밭 고랑에서 커다란 수건을 돌려쓴 깔리양 여인네 머리가 쑥 올라오며 바라본다. 한 모롱이를 돌자 사람들이 일제히 내리고 청년들이 굵은 대나무를 관 줄에 끼워 운구한다. 수풀 속은 나무가 많아 햇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데, 마을이 잘 내려다보인다. 앞으로는 홀로 하냥 외로운 세월을 보낼 테니, 이렇게 마을을 내려다보며 지나가는 가족도 보고 평생 벗하던 마을 사람들과 추억도 생각하라는 배려인 듯하다.

인근 몽족 마을의 여유 있는 집에서는 하관하는 날 아침에 소를 9마리나 잡는다. 산속에 피 냄새 진동하며 오전 내내 먹고 놀며 마을이 잔치 분위기에 휩싸이는데, 깔리양족은 아직까지 살림살이에 여유가 없는지 어떠한 먹거리도 없다. 묏자리도 몽족은 미리 다 준비해 두는데, 여기는 구덩이도 이제 판다.

◆하관

젊은이들이 곡괭이를 들고 달려드니 축축하게 젖은 땅은 금방 파이고, 그들은 그 흙을 플라스틱 함박에 담아 밖으로 버린다. 옆에서는 이틀 밤 동안 태우던 촛농 가득 쌓인 판자와 비닐들을 태운다. 망자가 생전에 먹거리를 만들던 냄비, 주전자 등에 칼로 구멍을 내더니, 그곳(저승)에서는 일하지 말고 편하게 살라는 뜻인지 망치로 때려 완전히 못쓰게 만들어 버린다. 생전에 쓰던 칼도 날카로운 끝과 날을 역시 망치로 두들겨 상하게 만들어 버리고, 집집마다 필수품인 자리와 선풍기도 함께 태운다.

얼추 구덩이가 다 파였는지 줄자로 높이를 재어보고 관의 네 다리는 옆에 타고 있는 불 속에 집어넣는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관 뚜껑을 빼꼼히 열고 마지막을 확인한다. 마침내 아잔(목사)이 기도문을 외우자 마을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고 그 주변에 쪼그려 앉아 간절하게 기도를 한다. 이어 찬송가를 부르며 장정들이 두꺼운 장대에 걸어 하관을 한다. 한참 동안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고요한 산속 풍경과 함께 더욱 숙연해진다. 하늘도 슬픔을 표현할 줄 알까, 이슬비가 오락가락한다.

서둘러 땅을 덮고 그 위에 커다란 빨간 십자가를 세운다. 땅에다 물을 조금 붓고 큰 물병을 세우더니 관 위에서 가져왔던 화초를 넣는다. 짐승들을 막기 위해서인지 빼곡하게 나무들을 꽂고 철조망을 두르더니 사람들이 서둘러 빠져나간다.

◆다시 일상으로

집으로 돌아오기 바쁘게 칼질 소리 요란하다. 허름한 부엌 안으로 가보니 가족들은 버펄로 고기를 맵게 볶아 서둘러 식사 준비를 한다. 그들과 함께 '아점'을 먹었다. 마당의 젊은이들은 다시 포커를 시작한다. 잠시 후 초등학교 아이들과 선생님이 몰려와 밥을 먹는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에 고요하던 분위기가 여름 햇살처럼 일순 쟁글거린다.

아이들도 돌아가고 이제 마당에는 친척들만 남아 뒷정리를 한다. 햇볕 아래에 앉아 지난 추억을 이야기한다. 눈이 유난히 크고 예쁜 농밍이라는 열 살 먹은 소녀가 옆에 바짝 붙어 무엇이 궁금한지 자꾸 묻는다.

마을길을 따라 내려가니 건너편 집에는 깔리양 전통복과 노란 목걸이까지 주렁주렁 차고 한껏 멋을 낸 아낙이 앉아있다. 옆에는 장정들이 모여 나뭇잎 삶아 놓은 것과 상갓집에서 가져 온 육회에 40도 깔리양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 하루를 끝내고 돌아온 방, 무심히 바라본 하얀 벽에는 검은빛 나뭇잎이 살랑이는 듯하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본다.

살아있는 것들에게는/ 먹는 문제가 가장 크다

먹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먹기 위해/ 상대에게 거짓말도,

때로는 칼도 서슴없이 겨눈다//

깊은 밤/ 하얀 벽을 따라/ 오글거리는 것들

풀씨처럼 작은 개미들이/ 제 몸보다 수백 배 큰/ 거미를 옮긴다

멀리서 보면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이는 듯/ 거대한 절벽을 오른다//

살아있는 것들에게/ 가장 숭고한/ 먹기 위해

제 몸보다 수백 배 큰/ 만다라를 끌고/ 사람들이 잠든 후

막 생을 마감한/ 경전을 끌고/ 야단법석野壇法席 중이다

-만다라, 윤재훈

윤재훈(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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