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미래 공공도서관에서 찾다] (5)<끝> 세상을 바꾸는 도서관 '광진정보도서관'

입력 2014-11-05 07:19:44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광진정보도서관은 올해 전국 도서관 평가에서 최우수 도서관으로 뽑혀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광진정보도서관은 올해 전국 도서관 평가에서 최우수 도서관으로 뽑혀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광진옥상텃밭체험단의 한 가족이 도서관 옥상에서 밭을 다지고 있다. 광진정보도서관 제공
광진옥상텃밭체험단의 한 가족이 도서관 옥상에서 밭을 다지고 있다. 광진정보도서관 제공

도서관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과감히 'Yes'를 외친 사람이 있다. 서울시 광진정보도서관을 대한민국 도서관의 모범사례로 이끈 오지은(44) 관장이다. 오 관장은 올해로 사서 경력 21년 차다. 이곳에서 관장을 맡은 지도 벌써 6년이 됐다.

그가 광진정보도서관장을 맡고 난 뒤, 광진구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들이 도서관으로 모여들었고, 이웃 간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졌다. 도서관으로 인해 광진구가 '살맛 나는 동네'로 바뀌기 시작한 것.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광진정보도서관은 올해 전국 도서관 평가에서 최우수 공공도서관으로 뽑혀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는 지난 2011년 '대통령상', 지난 2012년 '특별상'에 이은 세 번째 수상이다. 지난 9월 26일 이곳 도서관에서 오 관장을 만나 '광진구를 변화시킨 도서관의 힘'에 대해 들어봤다.

◆도서관에서 공동체의 복원을

오 관장을 만나 댓바람에 '광진정보도서관의 인기비결'을 물었다. 그러자 기자에게 '잠시 따라와보라'고 했다. 그가 기자를 데려간 곳은 생뚱맞게도 도서관 옥상이었다. 도서관 옥상이라면 보통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붙어 있는 공간으로 예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마주한 옥상 풍경은 예상과 달랐다. 눈앞에 펼쳐진 건 330㎡ 규모의 텃밭이었다. 텃밭에는 가을 수확을 기다리는 배추와 무 등이 한가득 심어져 있었다. '쭌은찬네 텃밭' 등 구역표시를 한 푯말도 군데군데 세워져 있었다. 오 관장은 "지난해부터 도서관 옥상에서 도시농업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며 "한 달에 두세 차례 도서관 강의실에서 농사짓는 법을 배우고 실습도 한다"고 소개했다.

오 관장은 '도서관과 도시농업학교'라는 이색적인 조합의 배경을 '공동체의 복원'이라고 설명했다.

"도시화에 따라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고 있잖아요. 끊어진 이웃 간의 정(情)을 도시농업을 통해 연결하고 싶었어요.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로컬푸드의 중요성도 알리고 싶었죠."

올해 이 도시농업학교 참가 주민은 70명. 지난해에는 65명이었다. 할아버지 세대부터 어린이 세대까지 뒤섞여 있는 참가자들은 서로를 '식구'라고 부른다.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농사 비법을 알려주고, 한 달에 1번은 도시농업학교 1기 졸업생과 2기 재학생이 도서관 옥상에 모여 텃밭에서 거둔 수확물로 마을잔치를 벌인다.

왜 도시농업학교가 '도서관'에서 이뤄져야 할까 궁금했다. 오 관장은 "도서관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명쾌하게 답했다. 그는 "도서관은 모든 사람들이 모일 수 있으면서 주말에도 문을 여는 유일한 공공기관"이라며 "무엇보다 농업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책들이 무수히 많다. 도서관이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도시농업학교를 시작한 후 도서관은 농업이 포함된 기술사회과학 분야 도서가 대출 1순위가 됐다. 도서관도 농업 바람에 힘을 불어넣고자 농업 관련 책을 눈에 잘 띄는 공간에 따로 비치해뒀다. 더불어 도시농업학교 참가자들은 '책을 품은 텃밭'이라는 온라인 모임을 형성해 스스로 농업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도서관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광진정보도서관은 '도서관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찾아서 하고 있다. 이 도서관은 무료 강의 위주의 프로그램보다 공공성 확대를 목적으로 하는 주민 참여형 프로그램을 기획해 차별화를 기하고 있다. 올해 전국 도서관 평가에서 이 도서관이 1만4천여 개 도서관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이유도 '주민 참여와 지역사회 교류협력 강화' 부문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는 점이었다.

3년째 진행 중인 '시니어 자서전 쓰기'가 대표적이다. 65세 이상 지역 어르신들이 자서전을 쓸 수 있도록 돕는 도서관 프로그램이다. 현재는 여러 도서관에서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첫발을 내디딘 곳이 바로 광진정보도서관이다. 지금까지 발매된 자서전은 모두 21권. 비매품이지만 또 하나의 도서로 도서관 한쪽에 보관되어 있다.

30개나 되는 생애주기별 독서회도 이곳 도서관의 명물(名物)이다. 대구에서 지난해 독서회를 가장 많이 운영한 도서관은 달서구 본리도서관으로 모두 9개 독서회인데, 1개를 제외한 8개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태아부터 유아, 청소년, 주부, 직장인 등 대상을 세분화해 독서회를 운영하고 있다, 또 독서회마다 도서관 사서들을 참여시켜 독서회의 질을 높이고 있다.

시니어 독서회 참여를 비롯해 일주일에 두세 번 도서관을 찾고 있다는 진주순(61) 씨는 "독서회를 하면서 동네에 살고 있는 또래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됐다. 도서관이 이웃 간 유대감을 형성해 주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며 "물론 이런 모임은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지만 도서관 모임은 자기 발전으로까지 연결되는 것 같아서 더욱 좋다"고 말했다.

이곳 도서관 취재를 마친 후 다시 찾은 사무실에서 오 관장은 음료수 한 병을 기자에게 건넸다. 방금 주민 한 명이 찾아와 주고 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언제부턴가 주민들이 도서관 사무실을 편하게 드나들고 있다"며 "김장철엔 사무실에 주민들이 가져다준 김치가 한가득"이라고 자랑했다. 광진정보도서관에는 어쩐지 '사람 사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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