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메디앙스 '甲질' 좀 막아주세요

입력 2014-11-03 10:04:19

갑작스런 반품 거부 통보, 소송 내자 "계약서 봐라"

한자로 가득 쓰여 계약자가 내용파악을 전혀 못했다는 보령메디앙스와의 계약약정서.
한자로 가득 쓰여 계약자가 내용파악을 전혀 못했다는 보령메디앙스와의 계약약정서.
보령메디앙스의 물품 반품 거부로 1억원대에 이르는 물품이 창고에 가득 차 있다.
보령메디앙스의 물품 반품 거부로 1억원대에 이르는 물품이 창고에 가득 차 있다.

2004년 포항에서 보령그룹 계열의 유아용품 전문업체 '보령메디앙스'(이하 보령)와 도매 물품공급계약을 맺은 남모(56) 씨. '보령'이라는 브랜드를 믿고 열심히 일해 6년 만에 사업을 안정기에 올려놓았다. 이제 좀 살겠다 싶었는데, 2010년 돌연 보령 측이 소매점의 물건 반품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담당이 바뀌었다" "한 달 뒤에 해주겠다" "한꺼번에 해주겠다" 등등의 이유를 대며 반품 수령을 차일피일 미루다 4년을 넘겼고, 물건은 빈 창고를 가득 메웠다. 1억원이 넘는 물량이다. 편의점과 슈퍼마켓 등 소매점에서는 끊임없이 반품이 들어왔지만 보령 측은 도매점 반품을 받아주지 않았다.

결국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법원은 보령과 작성한 '거래약정서'에 명시된 '물품 하자 발생 경우 3일 이내 통지해야 하고, 이 기간이 지나면 보령 측 책임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의 약정을 근거로 보령 측의 손을 들어줬다.

남 씨는 판사에게 "예전 남양유업 대리점주 자살 사건처럼 저도 목숨을 끊어야 돌아봐 주시겠습니까? 그럼 저도 죽어버리겠습니다"라며 울분을 터트렸다. 소송을 진행한 남 씨는 괘씸죄에 걸려 물건을 반품도, 매입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남 씨는 당시 작성했던 계약서를 보여주며, "한자로 빼곡히 써 있는데 누가 제대로 읽겠느냐? 2010년 이전까지 잘 해주던 반품이었기에, 믿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반품을 거부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대구'포항'경주'안동 등지에서 보령과 거래하는 다른 도매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지만 행여 더 불이익을 받게 될까 봐 입도 열지 못하고 있다. 월초에 물건을 받아 월말에 입금하는 구조가 아닌 월말에 물건을 받게 하는 속칭 '밀어내기'도 계속되고, 소매점에서 해당 물건이 안 팔려 반품 요청을 하면 모든 책임을 도매상으로 돌린 뒤 반품을 거부하는 행태도 되풀이되고 있다.

남 씨는 "한자투성이로 된 계약서를 면밀히 살피지 않은 게 죄라면 죄이지만, 수년간 매입과 반품을 되풀이해왔기 때문에 계약서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며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대기업의 오랜 관행은 바뀌지 않는다. 결국 내가 죽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보령 측은 "소송이 진행되는 사안이어서 답변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다른 보령제약 그룹 계열사인 보령제약 관계자는 "남 씨처럼 거래하는 대리점에 대해 (보령메디앙스와 달리) 우리는 모두 반품을 받아주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경실련 정휘 집행위원장은 "정보'자본 등 모든 면에서 열세에 놓인 가맹점주들을 본사가 종속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다. 법에 저촉되지 않게 횡포를 부리면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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