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24시-현장기록 112] 112 접수요원은 사투리 통역관!

입력 2014-10-30 07:43:37

112 접수요원들에게 필요한 필수 자질 중 하나는 '사투리 알아듣는 능력'(?)이다. 경북 지역에서 걸려오는 신고 전화 속 사투리를 알아듣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웃지 못할 일도 발생하게 마련이다.

112 접수요원으로 근무한 지 다섯 달째. 여전히 배울 것이 많아 하루하루가 새로운 나날의 연속이다. 그러면서 112 접수요원이 갖추어야 할 필수 자질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느끼게 되었다. 접수요원은 당연히 관내 지리를 잘 알아야 하고, 112 시스템을 능수능란하게 다뤄야 하고, 무전지령을 적절히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신고자가 하는 말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잘 알아듣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외국어든 술주정이든, 특히 사투리이든 말이다.

"아 너이서 골부리 주스러 갔는데 여태 안 오니더. 경찰아자씨 와서 쫌 찾아주소!"

7월 초순 야간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받은 첫 신고였다. 신고자는 사투리가 심한 할머니였다. 순간 이 할머니의 고향은 안동지역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릴 적 안동에 있는 전통시장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출구 쪽 인사말에 '잘 가시더'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선 무슨 뜻인지 부모님께 여쭤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하시더" "~했니더"라는 말을 하시는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안동이나 인근 지역이 고향이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말한 '골부리'는 처음 듣는 단어였다. 바로 옆자리에 안동이 고향인 선배에게 물어보니 다슬기를 '골부리'라고 한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바로 "할머니, 아이들 네 명이서 다슬기 채취하러 갔는데 지금까지 집에 안 온다는 말이죠? 경찰관이 바로 가서 찾아볼게요. 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라며 신고를 접수해 안동경찰서에 하달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무 일 없이 무사 귀가했다.

신고 접수 후 인터넷에 '골부리'를 검색해 보았다. 유독 안동지역에 '골부리'가 들어간 상호가 많이 검색되었다. 이 신고 덕분에 새로운 단어를 하나 배우게 되었다. 그것도 다 큰 어른이 되어서 말이다.

이처럼 112 신고 접수 경찰관은 관내 지역의 여러 방언을 알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방언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순 없을지라도 바로 알아들을 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12는 국민 모두에게 평등해서, 112를 찾는 신고자는 연령과 나이에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즉,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이, 그것도 어떤 방언을 사용하며 신고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접수요원이 사투리 통역관처럼 방언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가끔은 지역 방언을 별 무리 없이 알아듣고 있는 내가 새삼 놀랍고 신기할 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 4개월 전, 112종합상황실로 전입신청을 한 후, 우리 팀 반장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 112 접수요원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알아본다며 사전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때 반장님이 내게 한 제일 첫마디가 "채 순경은 경상도 사람이네요? 대구와 경북에서 계속 자랐단 말이죠? 잘됐네요. 잘할 거라 믿어요"라는 말이었다. 난 그때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었다. 오히려 내 억양과 발음이 너무 경상도 사람 같아 실망한 것이 아닐까 노심초사했었다. 아무래도 기업체의 콜센터 같은 전화 상담원들은 예쁜 서울말을 쓰며 상냥하게 전화를 받는데, 내 경상도 말투와 억양이 112 접수요원으로서 오히려 단점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었다.

지금은 반장님이 왜 사전 인터뷰를 했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아무래도 경북은 23개 시'군이 있어 다양한 지역 방언들이 존재할 것이고, 그만큼 다양한 어휘들이 사용될 것임이 분명하니, 경북지역에 맞는 경북 사람을 찾았나 보다. 대구에 사시는 부모님과 경북에 사시는 조부모님 덕에 난 자연스레 경북 도민 눈높이에 맞는 112 접수요원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웃지 못할 가장 난도 높은 신고를 받았다.

"여기 포항 ○○○ '이'치과 앞인데요. 주취자가 누워 있어요."

"신고자님 ○○○ e치과 앞이란 말이죠? 경찰 출동하겠습니다."

신고자는 '이치과'라고 말했고 난 분명 'e치과'라고 들었다. 미묘하게 'e'가 센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예전 한 TV 오락프로에서 출연자들을 상대로 2², 2e, e², ee을 구분해서 발음할 수 있는지 실험해보는 프로가 있었다. 그 결과 경상도 사람들만 특정한 음과 성조로 이 네 가지를 모두 다르게 구분할 수 있고 심지어 받아쓰기도 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나 또한 전국의 순경채용시험 합격자들이 모이는 중앙경찰학교에서 교육생으로 있을 당시 타 지역 동기들이 한번 읽어보라고 시킨 것을, 내가 각각 구분해서 읽는 것을 보고 한참 동안 배를 잡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재미삼아 웃자고 했던 것이, 이렇게 실제 업무에 쓰이게 될 줄이야…. 다시 한 번 대구경북에서 날 키워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그 뒤로도 나는 신고 접수 중 새로운 사투리가 등장하면 그때그때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익히고 있다. 심지어 전라도나 충청도 지역에서 신고 접수되어 경북관내로 이첩되어 온 신고는 빠짐없이 녹취파일을 직접 들어가며 그 지역 특유의 억양과 말투를 익히고 있다. 분명히 언젠가 타 지역 국민들이 경북지역 내에서 112신고를 하는 것을 내가 접수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더 빨리 신고 내용을 알아듣고 더 빨리 경찰을 출동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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