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드라마 영화 '빈집'은 남편의 폭력으로 집안에 감금된 채 살아가는 여자와 빈집을 전전하며 생활하는 특이한 청년의 사랑을 그렸다. 어느 날 빈집이라 여기고 들어간 곳에서 만난 멍투성이인 얼굴을 가진 여인의 슬프고도 공허한 눈빛에 사로잡힌 청년은 그녀와 함께 집을 빠져나온다. 도망쳐 나온 두 남녀가 찾아간 곳은 또다시 빈집. 두 사람은 빈집에서 행복한 한때를 누리지만 그 또한 오래가지 못한다.
남편의 집착과 횡포에 시달리며 유령처럼 살아가는 여자에게 아무리 멋진 저택인들 빈집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픔을 알아주는 청년과 함께 머물던 빈집은 정녕 빈집이 아니었다. 결국 빈집과 빈집이 아닌 것의 차이는 그저 사람이 살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간에 참된 사랑과 따뜻한 온기가 존재하느냐의 여부가 가름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기형도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열흘 전에 썼다는 시 '빈집'을 읽으면 가슴이 더 먹먹해진다.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는 마지막 연의 쓸쓸한 독백이 특히 그렇다. 사랑을 잃어버린 시인은 빈집으로 표현한 자신의 마음속에 사랑을 가두고 문을 잠그지만, 장님처럼 더듬거린다. 빈집에 사랑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가 어렵듯이, 빈집에 사랑을 가둬두고 애써 잊어버리기 또한 그리 쉬운 일이던가.
작가 김주영의 장편소설 '빈집'도 을씨년스럽고 황폐한 분위기가 맴돈다. 늘 밖으로만 떠돌다 도망자로 살아가는 아버지와 남편을 찾아 헤매며 딸을 구박하기 일쑤인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여자아이에게 가정이란 빈집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관을 만들기 위해 베어낸 오동나무와 대들보가 내려앉은 폐가는 사랑받지 못한 여인들의 가슴속 빈집을 상징한다.
대구시가 애물단지였던 동네의 폐'공가를 주민 편의시설로 바꾸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화재나 범죄의 위험성까지 안고 있던 흉물스러운 빈집을 주차장이나 텃밭 또는 쌈지공원 등 편의시설로 개선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온기와 사랑의 손길이 닿는 빈집은 더 이상 빈집이 아니다. 그렇게 시민들이 서로 정을 나누며 마음 안팎의 빈집들을 훈풍으로 메울 수 있는 공간들이 도심에 많이 되살아난다면 삭막한 도시 공간도 더 이상 빈집이 아닐 것이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