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바집 안 만들고 직원 음주측정하는 공사현장

입력 2014-10-27 10:29:37

신세계 건설 동대구환승센터…오직 안전! 점심 때 음주측정

사진 23일 대구 동대구역 복합환승센터 건설 현장에서 안전감시단원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는 현장 근로자들을 상대로 음주측정을 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사진 23일 대구 동대구역 복합환승센터 건설 현장에서 안전감시단원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는 현장 근로자들을 상대로 음주측정을 하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대구 신천동 동대구역 복합환승센터 공사현장에는 점심때가 되면 다른 공사장에서 볼 수 없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오전 공사 후 근로자들이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가 오후 1시가 되면 일렬로 늘어서 대기한다.

이는 동대구환승센터를 건설 중인 신세계건설이 건설현장에 '함바집'을 설치하지 않으면서 근로자들은 각자 마음에 드는 곳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음주측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건설은 1천여 명의 근로자들이 각자 식사를 한 곳에서 영수증을 가져오면 처리해주고 작업의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 일일 2회(아침, 점심 후) 음주단속을 하고 있다.

신세계건설 현장소장 문길남 상무는 "함바집을 없앤 동시에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음주 통제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매 끼니때마다 직원들을 상대로 음주 여부를 따지고 있다"고 했다.

신세계건설이 이권 개입 요소가 큰 함바집을 없애고 직원들에게 자율적으로 식당을 이용할 수 있게 하자 공사 투명성을 높였다는 평가와 함께 동대구역 주변 식당가에 낙수 효과가 퍼지고 있다.

동대구역 주변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명숙(52) 씨는 "한꺼번에 수백 명에 달하는 현장 인원이 식당을 찾아줘 신세계 공사가 시작되고 수입이 30%가량 늘었다"고 했다.

공사장 한 인부는 "많은 공사장에서 일을 해봤지만 구두로 술을 마시지 말라는 주문을 하지 실제 음주측정을 하는 곳은 처음이다"고 말했다.

그간 함바집은 비리의 온상이 돼 왔다. 함바는 일단 운영을 시작하면 현장 인부 수에 따라 확실한 수익을 보장받는 데다 현금장사인 탓에 대표적인 이권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 보통 500명 근로자를 기준으로 일 매출(아침, 점심, 저녁, 세참 2회)이 1천만원가량 된다.

이 때문에 건설현장이 차려지면 함바 운영권을 차지하기 위해 인맥과 로비를 총동원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과정에서 건설사 고위 간부나 공무원, 정치인 등의 고위층과 함바 브로커와의 검은 고리가 형성된다. 중견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A대표는 "1천 가구 아파트를 짓는 현장의 경우 함바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 보통 수천만원 정도의 커미션이 오가고 고위 정치인, 공직자 등의 인맥이 총동원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사 대표는 "함바 운영권을 따낼 경우 협력업체로부터 식사대금을 미리 한꺼번에 받는 등 실제 운영은 '땅 짚고 헤엄치기'다"며 "이익 창출이 쉬운 만큼 함바는 주로 건설회사 대표의 친인척이나 지인이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함바 비리는 한때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과거 전 경찰청장이 함바 비리로 구속됐었고 최근 부산에선 부시장이 함바 브로커에게 돈을 받은 혐의로 철창 신세를 지기도 했다.

동대구환승센터에서 신세계건설의 결단(?)은 현장의 투명성과 함께 주변 경제에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다. 신세계현장 인부가 1천여 명을 웃도는데다 공사기간이 3년여가 돼 낙수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함바

노무자 합숙소를 뜻하는 일본어 '한바'(はんば)에서 유래했으며 공사장 인부를 상대로 운영되는 현장식당을 일컫는 말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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