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팔계보다 탐욕스럽게, 인류 種의 변질…『인간농장』

입력 2014-10-25 07:41:19

인간농장/류 짜이 푸 지음/송종서 옮김/글항아리 펴냄

'인간성은 아주 취약한 것이지요. 인간과 짐승의 차이는 본래 크지 않습니다. 인간은 생존의 곤경에 빠져 강압과 유혹을 받으면 쉽게 길짐승으로 되돌아가거나 날짐승으로 탈바꿈하는 존재입니다. 현재 인간은 다른 종의 생물로 변하고 있습니다. 바로 금전동물입니다. 이 생물 종은 공통적으로 금전과 물질을 숭배합니다. 인류의 본성이 변질되고 있다는 것은 생명의 형태에 거대한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고, 이는 수소폭탄이나 원자 폭탄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은 지은이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고자 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지은이는 중국 인문학계의 거장으로 1989년 톈안먼 사건으로 정부의 박해를 받아 중국을 떠나 미국, 홍콩 등의 대학에서 방문학자, 객좌교수를 역임했다. 해외에 체류하면서 학술 연구와 함께 인간에 관한 산문을 썼다. 이 책은 그 산문을 모아 엮은 것이다. 여러 가지 인간의 유형을 짐승에 모습에 빗대 이야기함으로써 인간의 속성, 중국의 현실, 우리 시대 인류의 초상을 보여준다.

책은 1부 인간의 모습, 2부 짐승의 모습, 3부 아Q의 모습, 4부 마음의 모습, 5부 중생의 모습, 6부 시대의 모습 등 총 6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인간의 모습에서는 인간의 유형을 가축 인간, 꼭두각시 인간, 틀에 박힌 인간, 분열된 인간, 산성 인간, 잔인한 인간, 어리석은 인간 등으로 나눈다. 가축인간에서는 '돼지인간'을 주로 이야기하는 데, 돼지 인간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저팔계처럼 밥이 들어가는 창자는 골짜기와 같고, 색을 밝히는 쓸개는 하늘과 같다. 욕심이 한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서유기의 저팔계와 달리 사랑스러움이나 인간미는 없다. 저팔계는 실수와 거짓말을 한 뒤 조금은 미안해 할 줄도 알고, 성실하기라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가축인간들은 이해타산만 가득할 뿐 성실하지도 않고 스스로 성인을 자처하거나 혁명전사를 자처하는 자가 많다. 그래서 항상 자신들이 표준인 양 가장하고 자신들이 혁명의 성스러운 무리인 듯 가식을 떨기 때문에 혐오감을 준다고 찌른다.

서유기의 저팔계는 자신이 음식과 여색을 밝히는 것을 숨기지 않고, 이런 약점이 폭로되어 웃음거리가 되어도 화내지 않는다. 그래서 그 모습이 아름답지는 않아도 자연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현대의 가축 인간들은 자신의 본성을 감추고 거창한 도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 자신들의 추악한 행동을 혁명에 필요한 것이라고 둘러댄다고 비판한다. 이들 현대 가축인간은 혁명을 명분으로 타인의 의지를 강간하고, 강간을 범한 뒤에는 강간당한 사람이 감격할 것을 요구한다. 그들이 감격했다고 말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여기거나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2부 짐승의 모습에서는 족제비, 어미 돼지, 쥐 재앙, 늑대인간, 변질된 사자, 소, 호랑이로 변한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족제비 편에서는 날카로운 이빨보다 악취가 더 위력적일 수 있음을 설파한다. 악취 나는 중국의 현실이 폭정보다 더 위력적이고 충격적일 수 있음을 은유한 것이다.

변질된 사자 편에서는 우리에 갇혀 울부짖던 사자가 세월이 흐른 뒤에는 사람이 주는 먹이에 만족하고 살이 피둥피둥 올라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드는 광경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철제 상자(우리) 안의 생활이 습관이 되면 괜찮지. 영웅도 마찬가지야.'

3부 아Q의 모습에서는 중국의 대문호 루쉰의 소설 '아Q 정전'에서 아Q가 보여주는 여러 가지 모습을 통해 중국의 현재 모습을 비판한다.

4부 마음의 모습에서는 로댕 이야기를 통해 위대한 작가는 창작할 때 온 정신을 창작에 쏟아붓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지은이 자신의 생각을 반성하고 있다.

5부 중생의 모습에서는 과거 중국의 식인현상을 다룬다. 한 고조와 그의 제후들이 반역한 장수의 고기를 먹었다는 이야기, 소금에 절여 젓갈로 만들어 제후들에게도 이를 먹게 했다는 이야기, 여태후가 척부인을 사람돼지로 만들고 이를 자신의 아들에게 보여주는 잔인한 이야기 등을 통해 이처럼 잔인한 인간이 다시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6부에서는 '시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377쪽, 1만8천원.

조두진 기자 earful@msnet.co.kr

최신 기사